Soeun Sim

1983년 커크패트릭의 유엔, 그리고 다자외교

Kirkpatrick, Jeane J. 1983. “Testimony of U.S. Permanent Representative to the United Nations Jeane J. Kirkpatrick Before the House Appropriations Committee Foreign Operations Subcommittee,” in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Foreign Assistance and Related Programs Appropriations For 1984: Hearings Before a Subcommittee of the Committee on Appropriations. Washington, D.C.: Government Printing Office.

Nov 10, 2025
1983년 커크패트릭의 유엔, 그리고 다자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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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은 조건적이다”

지역기구들은 유엔이 창설된 이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유엔 헌장 제52조는 국제 분쟁의 해결에 지역기구의 참여를 권장하고, 제53조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을 집행할 때 지역기구를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즉, 헌장은 유엔 체제 내에서 지역집단의 역할을 제도화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엔 사무국과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이슬람회의기구(OIC)와 같은 여러 지역기구 사무국 사이에는 비공식적 협력망이 형성되었다. 실제로 일부 국제공무원들은 경력 과정에서 지역기구와 유엔 사무국 간을 오가며 근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기구의 지위는 회원국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유엔 내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소규모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유엔 의제의 중심이 되도록 만드는 주요 수단이 바로 이러한 지역 투표 블록을 통한 것이다.

숫자만 보더라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통일기구는 약 50개의 회원국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유엔 전체 회원국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아시아 그룹은 약 40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그룹이 연합하면, 일부 이탈자를 감안하더라도 다른 어떤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떤 안건이든 통과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표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지역적 연대보다는 글로벌 차원의 이해를 우선시하며 어떠한 블록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엔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역 투표 블록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미국은 이들의 집단적 입장에 끊임없이 직면한다. 이러한 지역 블록들은 구성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남아프리카공화국·다국적 기업 비판과 같은 ‘최소공통분모’ 이슈에서 단결하는 경향을 보인다.

유엔 총회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수십 건의 결의안, 다국적기업을 비난하는 행동규범, 산업국에서 비산업국으로의 자원이전을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는 주장 등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나 균형 잡힌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아랍국가들의 평화 노력 촉구나 남아공의 태도 변화에 대한 긍정적 인센티브는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러한 결의들이 국제 정의의 실현보다는 상징적 정치(symbolic politics)로 작동하고, 제3세계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유엔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권 담론(예: ‘고통 없는 발전(painless development)’, ‘행복할 권리(right to happiness)’)은 현실적 대안이 아닌 도덕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풍자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동서 진영 대립(East–West confrontation)보다 남북 문제(North–South issues)를 우선시하는 제3세계의 결집 속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실제로 투표 일치율(voting coincidence rate)은 서유럽과 80% 수준인 반면, 중남미 38%, 아시아 26%, 아프리카 23%, 동유럽 8%, 비동맹운동 22%로 현저히 낮다. 글쓴이는 유엔이 더 이상 보편적 가치의 장(universal moral arena)이 아니라, 제3세계 정치 블록(Third World political blocs)이 주도하는 이념적 무대(ideological stage)가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패트릭은 유엔 총회에서 113대 4로 통과된 팔레스타인 결의안을 사례로 들며, 유엔의 결의가 얼마나 상식을 압도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지를 비판한다. 그는 이 결의안이 안보리 결의 242·338호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실질적 효력 없이 단지 이스라엘을 압박하기 위한 상징적 제스처(symbolic gesture)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찬성한 이유는 결의가 실제로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 계산(cynical calculation) 때문이며, 오히려 ‘결과가 없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찬성표를 던진다고 분석한다. 발언자는 이러한 무책임한 투표 행태가 유엔의 신뢰성과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결의안의 그레셤 법칙(Gresham’s Law of resolutions)”이 작동해 쓸모 있는 논의가 헛된 문서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US Mission to the UN)는 이러한 결의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유엔을 “진짜 문제(real problems)”를 다루는 공간으로 회복시키려 노력해왔다고 강조한다. 푸에르토리코 문제나 이스라엘의 자격 부정 시도 등에서 원칙적 입장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실제로 결과를 바꾼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다자외교(multilateral diplomacy)에서는 오히려 “극도의 명확성(extreme clarity)”이 필요하며, 원칙적 사안에서는 모호한 외교적 표현이 아니라 명확하고 일관된 태도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핵심임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유엔에서 각국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더 이상 별개의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는 양자외교(나라 간 관계)와 다자외교(유엔 같은 국제기구 내 활동)를 따로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두 영역을 연결(linkage)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나라가 유엔에서 미국을 비난하고 중요한 사안에서 반대표를 던지면서도, 동시에 미국의 원조나 지지를 계속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런 행동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에, 많은 나라가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는 “유엔에서 반대표를 던지면 원조를 끊겠다”는 단순한 보복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엔에서의 투표나 태도 같은 행동을 미국이 외교 지원이나 원조를 결정할 때 참고할 여러 기준 중 하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면 그러한 행동은 반복될 수밖에 없으므로, 일정한 외교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마지막에 제시된 1982년 유엔 총회 통계는 실제로 미국이 서유럽 국가들과조차 점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미국의 외교적 고립을 수치로 드러낸다.

 

1983년은 레이건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공세적 반공주의(offensive anti-communism)”로 전환되던 시점이다.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 폴란드 사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 등으로 인해, 미국은 자신을 “자유세계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ree World)”로 재정의하고 있었음.
  • 커크패트릭은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서, 제3세계·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이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 하에 있다고 강하게 인식함.
  • 따라서 그녀의 발언은 단순히 유엔의 구조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냉전 이념 전쟁(cold war of ideas) 속에서 유엔이 “자유 진영의 적대적 공간”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또한 1970~80년대 초 유엔 총회에서는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IEO)’,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 같은 의제들이 중심에 있었음.

  • 제3세계는 식민지 유산, 자원 불평등, 무역 규칙 문제 등을 제기하며 경제 정의와 주권 회복을 요구했고, 미국은 이를 “반자본주의적 수사(anti-capitalist rhetoric)”로 간주함.
  • 실제로 유엔에서는 ‘시오니즘=인종차별(Zionism is Racism)’ 결의(1975), 남아공 규탄, 중남미 군사정권 비판 등 미국과 그 동맹을 겨냥한 결의가 잇따랐음.
  •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의 유엔 내 투표 일치율이 급감(특히 1982~83년)했고, 커크패트릭은 이를 “미국의 외교적 고립(diplomatic isolation)”으로 진단한 것.

이 시기 레이건 행정부는 유엔을 점점 신뢰하지 않았음. 이에 1981년, 미국은 유네스코(UNESCO) 탈퇴를 검토했고, 1984년에는 실제로 “반서구적 편향”을 이유로 탈퇴했음. 미국은 유엔 분담금 체납(arrears)으로 재정 압박을 가하는 한편, “linkage diplomacy” 즉, 유엔 내 투표행태와 미국의 양자원조를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함.

그녀는 유엔을 미국이 자국 이익을 방어해야 하는 이념적 전장(ideological battleground)으로 인식함. 커크패트릭은 『Dictatorships and Double Standards』(1981)에서 “권위주의적 독재(authoritarian regimes)”는 공산주의 독재보다 개혁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를 제시한 바 있음.

  • 이는 “친미 독재는 지지할 수 있다(‘friendly authoritarians’ are preferable)”는 현실주의적(혹은 보수적) 세계관으로, 레이건의 외교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음
  • 이런 맥락에서 그녀가 유엔을 비판한 이유는, 유엔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공산권과 제3세계의 정치적 수사에 휘둘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임.
  • 따라서 이 증언은 단순한 정책 보고가 아니라, 미국의 도덕적·이념적 리더십을 복원하려는 외교적 선언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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