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국제무역제도에서 탈출조항(escape clause) 의 최적 설계 문제를 다룬다. 국제 제도는 포함되는 국가 수, 의사결정 방식, 사안의 범위, 중앙집중화 수준, 유연성 정도에 있어 상이한데, 저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국가들의 합리적이고 자기이익적인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국제무역협정에 널리 포함되는 탈출조항은 국가가 합의된 의무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도록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로, 협정의 신뢰성과 자유화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동시에, 정책 결정자에게 필요한 유연성을 제공한다. 따라서 저자들이 던지는 첫 번째 핵심 질문은 “언제 이러한 유연성이 합리적으로 최적화되는가?”라는 것이다.
논문의 주요 주장은 세 가지다. 첫째, 탈출조항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효율적 균형으로 작동한다. 미래의 보호무역 요구나 시장 개방 압력의 크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탈출조항은 국가들이 무역자유화 협정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Rational Design 논의의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유연성도 증가한다”는 가설(F1)과 맞닿아 있다). 둘째, 탈출조항은 반드시 사용 비용(cost) 이 수반되어야 하며, 이 비용은 향후 협정 준수 의지를 신호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조항처럼 비용이 낮은 장치는 더 자주 사용되는 경향이 있으며, 국가들은 예상되는 국내 보호무역 압력의 크기에 따라 비용 수준이 다른 탈출조항을 선호하게 된다.
셋째, 탈출조항은 협정의 성립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진다. 유연성의 존재는 장기적 이익 배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을 완화하고, 초기 협상 타결을 용이하게 한다. (Rational Design의 또 다른 가설인 “분배 문제가 심각할수록 유연성이 증가한다”(F2) 와 부합). 결국 저자들은 형식적 모형을 통해 탈출조항이 협정 설계 단계와 반복적 무역 게임 모두에서 제도의 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며, 탈출조항이 없었다면 많은 무역협정은 정치적으로 타결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탈출조항(escape clause)의 필요성을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찾는다. 각국은 매 시기마다 예상치 못한 충격—가격 변동, 공급 변화, 기술 변화, 정치 제도의 변화 등—으로 인해 자국 내 보호무역 압력이 갑작스럽게 커지거나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한다. 기존의 반복 게임 모델에서는 협정 위반 시 상호 보복을 통해 협력을 유지한다고 보았으나, 현실에서 국가는 국내 정치적 압력 때문에 불가피하게 합의를 어길 수 있으며, 이를 단순한 “배신”으로 간주하면 협정 전체가 붕괴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탈출조항은 예외적 상황에서 일시적 위반을 허용하면서도 일정한 비용을 부과해, 협정을 유지하고 장기적 협력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한다.
탈출조항의 핵심은 위반 시 비용(cost)을 지불하는 구조에 있다. GATT/WTO 체제에서 이를 활용한 국가는 피해국과 보상 협상을 하거나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하는 등 경제적·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 이러한 비용 지불은 향후 협정 준수 의지를 신호하고, 협정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결과적으로 탈출조항은 무역 협정의 “불완전성”을 의도적으로 설계한 장치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불확실성이 큰 국제 환경 속에서 협정의 내구성과 협력의 심도를 오히려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 이 논문은 탈출조항 설계에서 비용 수준이 핵심적임을 강조한다.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국가는 심각한 충격에 직면했을 때 제도를 포기하고 협정을 탈퇴할 위험이 커지고, 반대로 비용이 지나치게 낮으면 탈출조항이 남용되어 협정 자체의 협력 효과가 약화된다. 따라서 협상 당사국은 적정 수준의 중간 비용을 설정하는 것이 최적이며, 이를 통해 협정은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결국 탈출조항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내생적 변수로 간주되며, 각국은 협력 유지와 정치적 유연성 간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협상을 타결한다.
- 또한 탈출조항은 협정 체결 가능성 자체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기존 이론에 따르면, 장기 협력의 가치가 커질수록 초기 협상에서 분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어 합의가 지연될 수 있다. 그러나 탈출조항이 포함되면 장래에 분배 구조를 조정할 수 있다는 여지가 생기므로, 초기 협상에서의 갈등이 완화되고 협정 체결이 용이해진다. 따라서 탈출조항은 단순히 협정 운영의 안정 장치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합의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타협 장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모델
1. 기본 설정
- 두 나라(자국, 외국)가 있고, 각각 하나의 기업이 동일한 상품을 생산
- 기업들은 서로 상대국 시장에 수출하므로,관세·무역장벽(t, t*)이 기업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줌
- 국내 관세(t): 자국 가격을 올려서 자국 기업의 이익 증가.
- 상대국 관세(t*): 수출을 줄여서 자국 기업의 이익 감소.
- 따라서 기업 이익은 양쪽 무역장벽의 함수로 표현→.
2. 정부의 효용 함수 (Government Objectives)
정부는 단순히 국민 전체 후생만 보는 게 아니라, 정치적 동기도 함께 고려합니다. 효용 함수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 소비자잉여(CS): 관세가 오르면 소비자 가격이 올라가서 잉여가 줄어듦.
- 생산자잉여(기업 이익): 자국 기업 이익이 늘면 정부도 이득(기업 후원, 로비, 고용 유지). 여기에는 가중치(y 또는 g)가 붙음.
- 관세수입(tM): 일정 수준까지는 관세수입이 늘지만, 너무 높으면 무역 자체가 줄어 수입이 감소.
따라서 한 나라의 효용은
- 홈: W(t, t*) = CS(t) + y·Π(t, t*) + tM(t)
- 외국 W*(t, t*) = CS*(t*) + g·Π*(t*, t) + t*M*(t*)
즉, 소비자 이익 + 기업이익(로비 영향) + 관세수입을 합친 구조.
3. 정치경제적 해석
- 이 함수는 Baldwin(정치적으로 현실적인 정부 목표)와 Grossman & Helpman(로비·캠페인 기부 모델)의 전통을 따름.
- 핵심은 정부가 재선 동기를 가진 행위자라는 것. 그래서 소비자 후생(표)과 기업 이익(기부·정치적 지원) 사이에서 균형을 잡음.
4. 게임 구조
이제 이 효용 함수를 바탕으로 비협력적 무역정책 게임을 정의
- 상호 협력(둘 다 관세 낮춤 → Pareto 최적).
- 상호 배신(둘 다 관세 높임 → Nash 균형).
- 일방적 배신(한쪽만 관세 올림 → 상대는 손해, 본인은 단기 이득).
- 속임수 당한 상태(한쪽만 개방, 다른 쪽은 보호 → sucker’s payoff).
즉, 이 상황은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구조임.
이 모형은 두 나라 정부가 무역장벽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그리고 탈출조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정부의 효용은 소비자잉여, 기업이윤, 관세수입으로 구성되며, 기업이윤은 정치적 로비와 후원 때문에 가중치가 붙는다. 기본 구조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로, 협력(P)이 최적이지만 당장의 유혹 이익 B(y,g)) 때문에 일탈(D)을 선택할 수 있고, 따라서 협력이 유지되려면 그 유혹보다 미래 협력의 가치 가 더 커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충격으로 각국이 언제든 예기치 못한 보호주의 압력을 받을 수 있어, 단순한 죄수의 딜레마로는 제도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 = 내가 미래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는지 (인내심).
- 1에 가까울수록, 미래이익을 거의 그대로 중요하게 여긴다.
- 작을수록, 미래이익보다 당장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
- = 협력했을 때 평균 이익.
- = 협력하지 않았을 때 평균 이익.
그래서 협력 유지의 보상 > 지금 당장 배신해서 얻는 이익이면 협력이 유지된다.
“무한히 반복되는 미래”를 현재가치로 환산했을 때의 총합 계수
- 예를 들어, 내일 얻는 10원을 오늘 가치로 따지면 무한히 합한 값이이 된다
👉 쉽게 말해, “미래에 계속 같이 하면 더 이득이다”*라는 계산을 나타낸 식이다.
이때 탈출조항(EC)이 제도적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정부는 유혹 이익이 작으면 협력(P), 크지만 감당할 수 있으면 탈출조항(EC), 너무 크면 배신(D)을 택한다. 탈출조항을 쓰려면 비용 k를 지불해야 하는데, k가 너무 크면 제도는 경직되어 무너지고, 너무 작으면 남용으로 협력이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k를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렇게 하면 충격 상황에서도 협정이 유지되고 협력이 더 안정적·지속적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미국은 1904년 캐나다의 덤핑 규제, 1947년 자국의 세이프가드 조항 등 자국 법제를 국제규범으로 확산시켰다. 관세 및 무역 일반협정(GATT) 제19조나 반덤핑·상계관세 규정 역시 이런 국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보호주의 압력이 커질 때 정부가 협정을 완전히 파기하지 않고도 부분적으로 이탈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했다.
또한 탈출조항의 필요성은 분야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무역과 환율 같은 경제 분야는 가격 충격, 공급 변화, 기술 혁신 등으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일시적 이탈을 허용하는 조항이 빈번하게 도입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환율조정 규정이나 유럽환율조정제도(ERM)의 패리티 조정이 그 사례다. 반면 군비통제와 같은 안보 분야에서는 주요 행위자가 군부로 한정되고 예상치 못한 충격의 빈도가 적어 탈출조항이 드물다.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나 전략무기제한(SALT) 협정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큰 영역일수록 탈출조항이 제도 설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며, 그 비용은 정치적 조정과 개혁 부담으로 귀결된다.
최적의 벌칙 수준과 제도의 안정성
탈출조항(escape clause)의 비용이 너무 높으면(k > K) 충격 상황에서 조항을 쓸 수 없어 협정이 붕괴한다. 반대로 비용이 너무 낮으면 남용되어 협력이 무력화된다. 따라서 국가들은 사전 협상 단계에서 최적의 벌칙 수준 k*를 합의해 제도의 경직성과 안정성을 균형 있게 설계하려 한다. 결국 국제 제도 설계에서 중요한 과제는 협력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벌칙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탈출조항 사용 비용과 경험적 증거
실증적으로도 비용 수준은 탈출조항의 사용 빈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 무역법의 세이프가드 조항은 보상·보복 위험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았으나, 상대적으로 저비용인 반덤핑·상계관세는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GATT에서도 제19조(세이프가드)는 사용 횟수가 극히 적었던 반면, 덤핑 규정은 1970년 이후 2,000회 이상 발동되었다. 비용이 높은 탈출조항 대신 국가들은 자발적 수출규제(VERs) 같은 회색지대 조치를 선호했는데, 이는 비용을 수출국으로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 개혁과 비용 조정의 효과
GATT와 WTO는 탈출조항의 활용을 늘리기 위해 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VERs 사용을 금지하고, 탈출조항을 사용할 경우 첫 3년 동안은 보복·보상이 면제되도록 하여 비용을 낮췄다. 이는 국가들이 고비용 대체수단(AD, VERs 등)을 피하고 공식적인 세이프가드 제도를 더 활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변화는 지도자들이 실제로 비용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제도의 사용 행태를 설계함을 보여준다.
통화제도의 사례와 교훈
국제통화 체제에서도 비용 수준은 중요한 변수였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탈출 조건이 모호해 잦은 평가절하가 발생했고, 협력 효과가 약화되었다. 반면 유럽환율조정제도(ERM)는 점차 조건을 엄격히 하면서 탈출 가능성을 줄였는데, 그 결과 제도는 경직화되어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영국·이탈리아의 1992년 탈퇴로 이어졌다. 이는 탈출조항 비용 설계가 경제 제도의 안정성과 지속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법학의 ‘효율적 계약 위반(efficient breach)’ 논리와 유사한데, 계약을 지키는 것보다 위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 위반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손해배상을 통해 조정하는 방식이 협정 체결 자체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세 가지 결론을 제시한다. 첫째, 탈출조항은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효율적 균형을 만들어내며, 불확실성이 클수록 이런 장치가 협정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탈출조항은 일정한 비용이 부과될 때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비용이 너무 낮으면 남용되고, 너무 높으면 무용지물이 되므로, 제도 설계자는 중간 수준의 벌칙을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셋째, 탈출조항은 초기 협정을 성사시키는 핵심 요소다. 이는 단순히 협정의 집행뿐만 아니라 체결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제 협력과 국내 정치 사이의 긴장을 완화해 두 레벨 게임(two-level game)을 관리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국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탈출조항 같은 유연성 설계에 크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