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투키디데스와 정치사 (고전 정치 합리주의의 부활)

Strauss, Leo, “Thucydides: The Meaning of Political History,” in The Rebirth of Classical Political Rational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72–102.
Sep 23, 2025
투키디데스와 정치사 (고전 정치 합리주의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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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우스의 문제의식

  • 현대 정치학의 위기: 슈트라우스는 20세기 정치학이 행태주의·실증주의(positivism)에 치우쳐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는 학문으로 변했다고 비판
  • 역사주의(historicism) 비판: 그는 모든 가치가 시대와 맥락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역사주의적 관점을 거부했습니다. 그 대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자연법(natural right)’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봄
  • 투키디데스가 단순히 ‘전쟁기록자’가 아니라, 인간 본성과 정치의 조건을 드러낸 철학적 역사가라는 해석을 강조

서구 전통은 본질적으로 예루살렘과 아테네, 즉 신앙과 철학이라는 상호 배타적 요소의 긴장 위에 세워져 있다. 성경은 순종적 사랑을, 철학은 자유로운 탐구를 인간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것으로 보았고, 서구사의 전개는 이 둘을 화해시키려는 반복된 시도였다. 그러나 어떠한 종합도 한쪽을 희생시키기 때문에 진정한 합일은 불가능했고, 이 긴장이야말로 서구 전통의 활력의 원천이었다. 따라서 서구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은 단순한 순응이나 통합이 아니라, 이 긴장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사는 이러한 서구 전통 속에서 그리스적 기원을 갖는다. 정치사의 주제는 인간의 자유와 제국이라는 숭고한 목표이며, 이는 대중적이고 공화적인 삶, 곧 폴리스의 정신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진정한 정치사가가 되려면 단순한 시민을 넘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치란 행정과 기다림, 지루한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어 현인들이 하찮게 보곤 하지만, 바로 그리스에서 공화정의 정신과 철학적 지혜가 결합하면서 정치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근대 이후 역사는 정치사에서 문명·문화사로 확장되면서 철학조차 특정 문화의 일부로 환원시켰고, 자유로운 철학의 정당성은 위협받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다시 기원으로 돌아가, “왜 현자들은 역사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답은 투키디데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특수 사건을 기록하면서도 정치 생활의 보편적 본질을 드러내려 했고, 정치적 사건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연설문조차 직접 구성했다. 오늘날 기준에서는 결함으로 보이지만, 그의 작업은 정치사를 단순한 사실 기록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로 끌어올린 시도였다.

투키디데스에 대한 비판은 주로 근대 역사학의 기준에서 나온다. 근대 역사가들이 사회·문화·경제적 배경을 두루 다루는 방식과 달리, 그는 오직 정치적 사건(전쟁, 외교, 내란)에 집중했고, 연설문마저 직접 지어 넣었다. 그러나 역사가 근대적 방식만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투키디데스가 강조한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이나 트로이 전쟁보다 이 전쟁이 더 크고 의미 있는 이유를 장황하게 논증했고, 이를 통해 호메로스가 신화적 매력으로 덧칠한 과거 대신 현재의 현실과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투키디데스의 ‘새로운 지혜’다. 호메로스는 인간 삶을 과장과 미화를 통해 이야기했지만, 투키디데스는 꾸밈없이 실제 행위와 연설을 기록하여 정치적 삶의 진실을 보여주려 했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삶을 이해하는 길이 허구적 미화가 아니라, 구체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투키디데스의 선택은 곧 “그리스인들의 지혜(= 인간 삶의 보편적 성격을 찾으려는 태도)가 어떻게 구체적인 ‘정치사’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는가”라는 문제와 이어진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 문명이 힘과 부, 질서에서 절정에 오르면서 동시에 몰락으로 향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큰 전쟁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고, 나아가 전쟁과 평화, 그리스적 삶과 야만적 삶이라는 두 축 속에서 인간사의 모든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단순한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삶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며, 투키디데스는 이를 통해 꾸밈없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은 아테네를 전폭적으로 찬양하는 정치적 행위였으며, 투키디데스는 이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록하였다. 그는 스파르타가 절제와 안정된 제도를 오래 지킨 반면, 아테네는 혁신과 모험 정신으로 번영했으나 민주정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보았다. 페리클레스가 그 불안정을 어느 정도 제어했지만, 결국 아테네의 운명은 한 개인의 덕성에 의존해야 했고, 이는 제도로서 건전하지 못한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투키디데스의 정치적 기준은 절제를 중시하는 스파르타 쪽에 기울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테네의 진보와 창의성을 인정했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정 속에서 아테네의 영광을 기념물로 남기려 했으나,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서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지혜’로 남기려 했다. 결국 아테네 민주정은 절제보다는 무모한 대담성을 추구했지만, 투키디데스는 그것을 기록하고 성찰함으로써 오히려 아테네의 한계와 영광을 동시에 보존했다.

투키디데스는 정치적 덕목을 정의보다는 절제에서 찾았다. 그는 필연이 정의보다 강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모든 것이 필연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파멸로 이어지며, 따라서 올바른 길은 절제라는 중용이라고 보았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혁신과 모험으로 번영했으나 불안정했던 아테네보다는, 절제와 안정된 제도를 오래 지켜온 스파르타를 정치적으로 더 건강한 도시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아테네의 문화적 화려함보다는 지혜를 중시했다. 투키디데스는 전쟁과 평화, 야만성과 그리스성, 말과 행동의 긴장을 기록하며 인간 삶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다. 말과 행동은 서로 왜곡하면서도 함께 놓여야 진실에 가까워지는데, 그는 이를 통해 단순한 사건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와 지혜를 탐구했다.

투키디데스는 사건과 연설을 단순히 기록하지 않고 편집·배치함으로써 ‘진짜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실제 연설은 특정 청중을 위한 정치적 말이라 부분적이고 편향적이지만, 투키디데스는 그것을 전체 역사 속에 넣어 인간 삶과 전쟁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글도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호메로스가 꾸밈으로 왜곡했다면, 투키디데스는 절제와 과소 진술로 불완전했다.

플라톤과 투키디데스는 모두 절제와 혼합 정체(민주정+과두정)를 긍정했지만, 접근법은 달랐다. 플라톤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과 이성적 탐구를 중시하며 정치철학을 세웠고, 투키디데스는 인간이 겪는 필연적 사건과 한계를 강조하며 정치사를 썼다. 비유하자면, 플라톤은 “이상적 설계도를 그려 인간을 이해하려 한 철학자”이고, 투키디데스는 “현장에서 벌어진 전쟁과 정치의 실제 기록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 역사학자”였다.

투키디데스와 플라톤은 모두 인간과 정치의 본질을 탐구했지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 투키디데스는 전쟁과 정치라는 현실적 사건을 기록하며 인간 본성과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정치의 목적(안정, 자유, 번영)은 자명하다고 보았고, 문제는 그 속에서 어떻게 신중하게 행동하느냐에 있다고 봤다. 반면 플라톤은 정치의 목적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적이라 생각했고, 결국 철학을 통해서만 정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치가 철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 반면, 투키디데스는 “정치는 철학에 닿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 차이는 세계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나온다. 투키디데스는 전쟁, 불안정, 야만을 인간사의 근본으로 보았고, 평화와 조화는 그에 딸린 결과라 보았다. 반면 플라톤은 평화와 조화가 더 근본적이며, 인간 안의 최고는 우주적 원리와 연결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플라톤의 글에는 평온함이, 투키디데스의 역사에는 슬픔과 비극성이 깔려 있다.

소크라테스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인간사(부분)를 탐구하는 것이 결국 전체(진리)를 아는 길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정치사 자체는 철학에 속하는 하위 분야가 되었고, 크세노폰처럼 정치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삶을 기록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근대에 이르러 역사는 다시 한 번 바뀌어, 정치사에서 문명사·문화사로 전환되었다. 이는 겉으로는 진보처럼 보였지만, 투키디데스의 시각에서 보면 전쟁과 정치라는 본질적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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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규범적 이론)과 경험적 정치학은 오늘날 어떻게 연결되거나 단절되는가?
  • 근대 이후 역사학이 문화 중심으로 전환된 것처럼, 정치학도 지금 “문화적 전환”, “정체성·담론 중심 전환”을 겪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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