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UN의 글로벌화, 조직의 생존

Ruggie, John Gerard. 2011. “The United Nations and Globalization: Patterns and Limits of Institutional Adaptation.” Global Governance 9(3): 301-321.

Oct 22, 2025
UN의 글로벌화, 조직의 생존

조직의 “적응”이 핵심

Ruggie는 유엔이 세계화(globalization)의 복합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적 조정과 정책적 일관성(policy coherence)을 강화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유엔은 개발도상국의 취약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IMF·세계은행·WTO 등과 함께 글로벌 차원의 논의 구조를 형성했다. 특히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이 주도한 논의는 세계화가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얽힌 복합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엔 체계 전반의 통합적 대응을 촉구했다.

Ruggie는 유엔 체계가 본질적으로 분권적(decentralized)이며 ‘기둥(column)’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제도적 통합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유엔의 각 전문기구는 국가별 대응 부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립성이 강하고, 회원국들은 이러한 구조를 선호해왔다. 따라서 경제사회이사회(ECOSOC)나 행정조정위원회(ACC, 현 CEB) 같은 조정기구도 실질적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유엔과 브레튼우즈 체제 간의 개념적 수렴(conceptual convergence)이 이루어져, 시장의 긍정적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포용적(globalization with a human face) 세계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공통 인식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통 인식의 제도적 결과가 바로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다. 유엔과 세계은행, IMF 등 주요 국제기구가 처음으로 단일한 목표 아래 협력한 것으로, 빈곤감축·보건·교육·성평등 등 구체적 지표를 설정했다. MDGs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각 기구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상호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체계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록 기관 간 경쟁과 구조적 제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Ruggie는 MDGs를 통해 유엔이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며 제도적 응집력과 실효성을 높여가는 과정으로 평가한다.

또한 개발원조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조정 문제를 지적하며, 유엔이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각 공여국과 국제기구, NGO가 제각기 다른 절차와 기준을 적용하여, 수원국의 행정 부담과 거래비용만 높였다. 이러한 상황을 세계은행 총재 울펜슨은 “개발의 일방주의(development unilateralism)”라고 표현했다. 유엔은 이에 대응해 공통국가평가(CCA), 빈곤감축전략보고서(PRSP), 유엔개발지원체계(UNDAF), 상주조정관(resident coordinator) 제도 등을 도입하여 일정 부분 조정과 통합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절반의 행정력이 ‘공여국 요구 대응’에 소모될 정도로 비효율이 크다.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는 이러한 구조를 개선할 잠재력을 갖지만, 특히 양자원조를 포괄해 단일 프레임으로 통합하는 것은 여전히 유엔 체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불균형이 새로운 형태의 세계적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에는 전 세계 나머지보다 많은 컴퓨터가 존재하고, 맨해튼의 인터넷 접근 인구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많으며, 핀란드의 인터넷 호스트 수가 중남미 전체보다 많다. 이처럼 전 세계 60억 인구 중 약 40억 명이 정보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에 유엔은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를 주요 의제로 삼고, ECOSOC 선언과 함께 2001년 ICT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이 기구는 정부·민간·시민사회·유엔이 동등한 지위(equal standing)로 참여한 최초의 다중행위자(multistakeholder) 협의체로, 네트워크 기반 접근법(networked approach)을 채택했다는 점이 혁신적이었다. 비록 닷컴 붕괴로 민간의 기여가 줄어드는 한계가 있었으나, 루기는 이러한 ‘네트워크형 거버넌스’가 향후 유엔의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GC)’를 세계화의 사회적 공백을 메우려는 아난 사무총장의 대표적 실험으로 제시한다. 무역과 지적재산권 같은 시장 중심 규범은 강화된 반면, 인권·노동·환경 규범은 뒤처지며 세계화의 불균형을 낳았기 때문이다. 아난은 1999년 다보스 포럼에서 기업들에게 인권, 노동, 환경의 9대 원칙을 실천할 것을 제안했고, 유엔은 OHCHR·ILO·UNDP·UNEP, 국제노총, 주요 NGO와 함께 이를 제도화했다. GC는 학습포럼(Learning Forum), 정책대화(Policy Dialogue), 파트너십 프로젝트(Partnership Projects)를 통해 기업의 자율적 실천을 촉진하며, 개발도상국 기업들도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글로벌 네트워크 진입을 위해 적극 참여했다. 루기는 이를 단순한 유엔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부·기업·시민사회가 함께 규범을 형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거버넌스 실험’으로 평가하며, 유엔이 세계화 시대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진화적 시도로 해석한다.

한편 기관 간 협력이 어려운 이유를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에서 찾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위의 지렛대(leverage of authority)’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밀레니엄 개발목표(MDGs)는 정상회의를 통해 모든 국제기구의 회원국들이 승인한 덕분에 유엔 체계 전체에 강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는 특히 전문기구와 세계은행을 효과적으로 이끌었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GC)는 정부가 이미 합의한 인권·노동·환경의 9대 원칙이라는 권위를 활용하여,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었다. 그는 또한 권위는 위로부터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도 형성될 수 있으며, 각 기관이 협력을 자기 사명의 확장으로 인식할 때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세계화 시대의 유엔이 ‘네트워크형 거버넌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위계적 관료제와 달리, 네트워크는 수평적 협력과 상호보완을 전제로 하며, 모든 참여자의 임무를 진전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유엔의 주요 이니셔티브—특히 MDGs와 글로벌 콤팩트—는 이러한 구조를 채택했지만, 각 기관 간 역할 충돌과 리더십 경쟁이 여전히 존재한다. UNDP의 중심 역할에 대한 불만, 세계은행의 참여 부족 문제 등은 네트워크 관리의 섬세함과 자기 절제(self-restraint)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네트워크가 만들기보다 유지가 더 어렵지만, 복합적이고 다중행위자적인 세계화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협력 형태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네트워크형 협력체의 확산은 책무성(accountability)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낳는다. 네트워크는 규칙 기반 통제(rule-based)보다 성과 기반(results-based) 관리가 요구되지만, 유엔은 아직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또한 NGO 등 일부 행위자는 명확한 책임 구조가 없으며, 기관 간 협력 인력의 평가 기준 또한 불분명하다. 루기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엔이 헌장상 제약을 우회하며 혁신적 대응을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유엔이 여전히 20세기의 정부 간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동시에 21세기의 포괄적 글로벌 공공영역(global public domain)을 형성해가는 중심축으로서, 더 유연하고 다중행위자적 거버넌스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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