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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 행태와 관료정치

한기범. 2009.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 행태와 관료정치: 경제개혁확대 및 후퇴를 중심으로(2000~09)」, 경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Apr 11, 2026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 행태와 관료정치

1. 연구의 목적: '유일적 영도' 이면의 정책 역동성

본 연구는 북한이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정점으로 하는 절대권력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 북한의 정책 결정이 수령의 일방적인 교시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조직행태(Model II)와 관료정치(Model III)적 요인에 의해 선택되고 변형될 수 있음을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2. 분석 대상: 경제개혁의 전개와 후퇴 (2000~2008)

연구의 분석 대상은 2000년대 북한이 야심 차게 추진했다가 실패로 귀결된 경제개혁의 전 과정이다.

  • 경제개혁 추진기 (2000~2004): 실용주의 기조의 등장(2000)과 김정일의 의제 설정(2001)을 시작으로, 7.1 경제관리개선조치(2002), 시장 장려(2003), 그리고 농기업 시범개혁(2004)으로 이어지는 개혁의 가속화 단계를 분석한다.
  • 경제개혁 후퇴기 (2005~2008): '당의 영도 보장'과 '개혁 속도'를 둘러싼 당과 내각의 갈등(2005)을 기점으로, 비사회주의 검열 강화(2007)와 김정일의 후퇴 선언(2008)을 거쳐 시장에 대한 전면적 통제로 회귀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3.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 '직하(直下)' 층위의 갈등 구조

기존 연구들은 북한 체제를 보편성이나 특수성의 관점에서 파악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엄격한 위계 구조'라는 단면에만 주목해 왔다. 최근 '탈수령적 증후군'에 주목한 연구들이 등장했으나, 이들은 주로 하층의 사적 시장 발달이나 중간층의 부패에 집중하는 한계가 있다.
반면, 본 연구는 북한 수령제 시스템의 '직하(直下)' 층위, 즉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핵심 엘리트 기구 간의 행태를 분석함으로써 체제 내부의 실질적인 갈등 관계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4. 분석 틀 및 연구 방법론

본 연구는 정치체계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환경과 정치체계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며, 특히 앨리슨(Graham Allison)의 정책결정 모델을 원용한다. 정책을 합리적 행위자의 선택이 아닌, 조직의 산출물 및 관료 간 정치적 게임의 결과로 보는 시각을 통해 북한 내 관료정치 현상을 검증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에 활용한다:

  • 공식 문헌: 김정일 담화, 내각 결정서, 중앙기관 지시문 및 《경제연구》 등의 정기간행물.
  • 내부 기밀 문헌: 정책의 시행착오와 부정적 반응이 가감 없이 담긴 평양 강연자료, 강습제강, 학습제강 등.
  • 증언 자료: 관련 정책을 직접 집행하거나 경험한 탈북자들의 심층 인터뷰.
 

수령제

해방 전부터 서로 다른 지역 근거로 하는 연합체 성격이었음. 이후 1970년대 수령제 정비, 198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 공고화. 주체사상에 ‘혁명적 수령관’ 보태기. 김정일은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1974.2).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1974.4) 발표하여 북한 지배체제를 수령 절대주의체제로 신격화. 1980년대에는 수령체제의 이론적 정당화 추진 (혁명적 수령관, 사회정치적생명체론)

북한의 주체 노선은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등거리 외교의 필요성에, 중국이 강조한 이데올로기적 목표와 구소련이 강조한 실용적 수단을 결합한 측면이 있다. 주체사상은 이념을 강조하면서도, 마오쩌둥 사상보다 덜 과격하고 절충적이다.

김정일

김정일은 의심이 많음. 배신여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통치행태. 그 중에서도 ‘형식주의’ 모델에 가깝다. 권력기관의 기능분할, 핵심기구의 직할, 조직간 수평적 연계의 차단을 모도하며 정책결정을 독점하려 했음. 북한의 정책들은 거의 전부 외관상 김정일의 구상과 의도가 반영된 모습을 보이고 있음.

수령제 조직의 제도화와 정책결정기구

김정일 시기 당의 역할은 정책지도 기능보다는 조직, 선전 등 내부사업에 편중되었고, 1990년대 북한 경제난으로 내각의 경제사업을 크게 지도할 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각은 당의 관여가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당군의 특혜적 경제사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경제를 관리해야했고, 정치논리의 제약 하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변함이 없었다. 지도자가 ‘내각책임제’를 강조하였으나, 경제개혁 초기에 다른 조직들과의 수평적 관계에서 내각의 권한을 확대해주지는 않았다.

“만약 지도자가 국방위원회의 역할 강화와 버금가게 내각의 능력 신장에 관심을 가졌다면, 북한의 경제개혁 실험의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 북한은 당국가 체제
  • 국가기구는 당의 정책노선을 집행

1990년대 이후 김정일이 국방위원장 자격으로 군사기구에 편중하여 체제를 관리하면서 당의 정책 회의체를 활용하지 않음. 내각은 김정일의 직접담화 대상에서 배제.

  1. 국방위원회가 국가 최고기관으로 부상
    1. 2009년 개정헌법에서 권한은 국방위원장에게로 임무는 국방위원회로 몰아놓았음. 국방위원장은 국가의 최고령도자로서 비상사태 선포 권한까지 장악하는 독임제 기관으로 격상. 즉 대외 위귀관리보다는 체제 내부관리에 치중한 헌법 개정
  1. 기간관 업무협조의 한계와 직할통치 문제

기간 관 업무 중복을 방지할 때는 김정일 보고 전 사전 합의질서가 있음. 또한 힘 센 기구는 자신이 직할하고 복잡하고 힘없는 기구는 누구에게 맡기고 있다. 군 지휘권이 특정인물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였다.

  1. 김정일이 가장 의존하는 기구는 당조직이다. 대신 당이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 지도하는 기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는 핵힘 정책은 국방위원회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경제개혁 관리는 박봉주 내각에 크게 의존했다.

당정군 분절경제

북한의 경제체제는 중앙집중적 계획경제, 중공업 우선 경제구조, 폐쇄적 자립경제라는 특성과 당정군 분절 경제이다. 북한경제는 또한 시장경제를 포함하는 인민경제, 군경제, 당경제로 3원화되어있다. 인민경제는 민수경제, 군 경제는 군수물자, 수출입업무 등. 당 경제는 김정일의 통치자금 조성을 위한 외화벌이 사업 등.

당이 경제정책을 수립하면 내각이 구체적으로 경제사업을 집행 및 관리하고 당이 지도감독함. (’내각책임제’)

사유재산은 없고 국유재산과 협동단체 재산만 존재한다. 실질 화폐 유통은 가계와 정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본위주의 현상 - (국가 사회이익보다 자기지방 자기 개인의 이익 등을 앞세우는 태도) ; 경제개혁으루 북한 하부 생산단위에 경영 자율성을 확대해주면서 생산단위들의 본위주의가 증가함.

 

1990년대 이전 경제대혁 의제 설정

  1. 1950-60년대 탈스탈린주의 조류에 대한 대응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권 경제개혁 움직임은 1950년대 중반 이후 개인숭배 비판, 탈스탈린주의 물결 속에서 소련의 흐루시초프 분권화 정책, 코시킨의 개혁정책, 동유럽의 ‘사회주의 시장제도’ 성립을 중심 개념으로 하는 신경제정책으로 시작함. 하지만 북한은 이를 ‘수정주의의 침습’이라 규정함. 김일성은 주체의 확립, 강화 전려긍로 민족적 독자성을 집중 부각함. 김일성의 정치적 통일단결 전략에서 경제개혁 의제는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1967년 갑산파 숙청사건과 연계된다. 경제분권화와 가치법칙, 그리고 물질적 이윤동기를 경제관리에 활용하려는 의제를 자본주의 경제관리 방법으로 규정함. 즉, 경제개혁 의제 성격이 단순한 정책 실무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감한 폭발적 성격을 가진 의제로 각인됨. 이에 간부들이 주도적으로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게 되어 일종의 잠금효과가 생김. 이후 ‘우리식 사회주의”

  • 중공업 우선, 경공업 농업 동시발전 (절충주의)
  •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상품생산에 있어 가치법칙이 작용하며, 따라서 돈이 있고 돈을 가져야 상품을 살 수 있다는 관점 제시 (절충)

하지만 실무자들은 ‘가치법칙’ 등이 정치적 민감성을 알고 있고, 지도자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대응할 수밖에 없음.

  1. 1970 년대 후반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대응

1977년대 말부터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 서방 설비 자재를 도입하여 경제의 내포적 성장을 달성하고자 함. 즉 자력갱생의 원칙을 더 철저히하자. 햇던 계획은 2년의 조정기를 두는 등 한계를 드러내서, 서방으로부터 기술설비를 들어오고 1984년 합영법 제정을 통해 외국과의 교류 모색. 이 역시 절충주의.

 
  1. 1980년대 구소련, 동구 사회주의 변화에 대한 대응

소련의 페테스트로이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면서도 노동계급과 농민의 계급적 차이를 소멸시킨다는 사회주의 완전승리 태제로, 동유럽 소련의 붕괴에 직면해서는 북한식 사회주의 독자성과 우월성을 부각하는 우리식 사회주의 테제로서 각각 대응하고자 했음.

  1. 1998-2000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경제관리에 대한 부담

김정일은 자신이 직접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주거나 누군가에 떠맡기려는 태도를 보임 그러나 1998년부터 천리마 대진군 운동 등 노력.

  • 1998-2000에는 계획기제 복원을 통한 중앙 당국의 통제능력 회복, 회생 가능성을 기준을고 한 공장 기업소 구조조정, 기간산업 중점 투자를 통한 공장 가동률 제고.
  • 2000년에는 경제사업에서의 실리주의 강조.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방문이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임. 6.3 그루빠의 정책 상무조는 비준안을 내각에 넘기고 해체됨.
  • 2001년 공식 권력승계 이후 2년여 지나서야 생각을 바꾸게 됨. 10.3 담화
  • 2002년 경제관리개선 조치 완성. 북한 당국의 정책 집행과정은 선 시행, 후 설득 보완이 특징임. 시행에 앞서 문제점 점검, 이해 당사자에 대한 홍보 설득노력이 부족함.
  • 2003년 3월 시장 장려치를 취했음. 시장을 호용하면서도 장마당에 대해 통제, 유통망을 독점하려함 (재통제는 2007년 10월부터임.) 그런데 선군경제건설 노선은 2002년 9월에 선언. 국방공업 우선과 민수부문의 경제관리 개선을 동시에 묶어서 구상.
  • 2004년 9월 박봉주 내각 등장. 내각 기구조정권, 간부인사권 부여.
  • 2006월 직무정지
  • 2008년 6.18 담화 발표 10월 시장 공격 강화, 11월 30일 화폐교환 (박봉주식 경제개혁 시도와는 거리가 먼 것)
 

북한 경제개혁과정의 조직행태와 관료정치

김정은이 국가경제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박봉주에게 위임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아보임

  • 경제문제 전념하면 간부들의 사상통제 등이 어려웜짐
  • 국방 강화 필요성으로 군수만은 자신이 직접 챙겨야 된다는 생각, 경제는 전문가 영역이라는 관념 작용.
  • 그는 1998년 권력 승계 직후 국가경제 관리에서의 내각책임제를 강조하나, 내각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주지는 않았다. 그 이후 박봉주에게는 실질적 재량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지원함. 내각은 개방담론을 적당히 옳게 이용했어야 하는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실수를 범한 것.
  • 6.18 담화는 김정일의 담화라고 해서 자신의 생각만을 반영하는게 아니라 문제상황의 진전을 거리를 두고 보다가 제 3자나 조직의 입장을 자신의 견해로 선택하여 담화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음.

조직행위 모델

조직이 주어진 과제를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표준행동절차가 필요함. 그러나 북한 당국이 71 조치 시행을 위하 하달한 로동보수규정이나 가격제정규정 등은 sop로부터 급격히 변경, 서둘러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완전 했고 복잡하였고 집행 과정에서 많은 정책혼선 야기.

내각은 김정일의 여러 지시들 가운데 일부를 절충하여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시장장려’ 를 선택.

7.1 조치 당시 지도자는 내각의 장악통제를 강조한 반면 내각은 하부단위의 자율권을 강조.

김정일이 2008년 618 담화를 통해 말하는 문제는 본위주의- 하부단위에 있었다. 하지만 본위주의를 조장한 당사자 내각의 입장은 반대였다. 내각은 상부구조 (기구편제 및 관리비용의 과다, 경제관리상 책임소재 불명확과 비효율성 등)

내각의 개혁작업이 확대되며 당과 군은 불편해짐. 지도자가 내각에 재량권을 부여하면서 당은 함부로 간섭할 수가 없고 내각 간부들이당의 영도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내각의 산출물이었다. 즉, 내각 간부들로 구성된 6.3 그루빠가 시행한 레파토리에서 발췌한 것.
  • 조직은 조직 자체의 생존을 위해 지도자가 모르는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환경에서 적응해야함.
  •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내각이 왜 자신의 소관과 능력을 뛰어넘는 시장경제를 선택하는지, 내각이 당과의 갈등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왜 무모한 개혁을 시도하는지, 방관하고 있었던 당은 어떤 방법으로 내각을 견제하기 시작하는지, 김정일은왜 뒤늦게 개입하는가
 

관료정치 모델로 접근하면 김정일은 권력을 독점한 것으로 보이지 않음.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정치문제였다. 당은 내각을 무력화시키고 개혁속도를 조절하는데 그치지않고, 지도자의 의중에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는 개혁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위해 경제문제를 정치문제로 도치시켜 개혁후퇴를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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