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Huang & Kang 2022

Huang and Kang (2022), "State Formation in Korea and Japan, 400–800 CE: Emulation and Learning, Not Bellicist Competition," International Organization
1. 연구 질문
  • Tilly의 "전쟁이 국가를 만든다"는 명제는 유럽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된 이론인데, 이게 유럽 밖에서도 보편적으로 성립하는가?
  • 한국과 일본은 유럽보다 1,000년이나 앞서(5~9세기)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를 형성했는데, 이 시기 두 나라 사이, 그리고 중국과의 전쟁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 없이 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기존 동아시아 국가형성 연구는 대부분 중국의 전국시대(Phase 1, BCE 475-221)에만 집중해왔다. 저자들은 이보다 훨씬 이후, 한국·일본이 국가로 등장하는 시기(Phase 2, 400-800 CE)에 주목하며, 이 시기는 중국 자체도 다루지 않고 한국·일본이라는 "주변부"의 행위성(agency)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화
2. 핵심 주장과 이론적 틀
  • 답은 모방(emulation)과 학습(learning)이다. 전쟁이나 전쟁 준비가 아니라, 중국 문명(특히 수·당)에 대한 존경과 위신 추구가 한국·일본 국가건설의 동력이었다는 것
  • 모방 vs 학습의 구분 (Simmons, Dobbin, and Garrett 2006의 확산 메커니즘 분류를 차용): 강제(coercion), 경쟁(competition), 학습(learning), 모방(emulation) 네 가지 중 - 학습: 비용-편익 계산에 따른 의도적 선택("무엇이 더 나은 방법인가")
    • 모방: 존경하는 대상을 닮고 싶어서 하는 aspirational 복제("무엇이 적절한가/정당한가")
    • 이 둘을 구분하는 세 가지 기준: (1) 차용 규모가 전면적(total)인가 선택적(selective)인가 — 전면적이면 모방 쪽, (2) 정당화 논리가 "결과의 논리"(비용편익)인가 "적절성의 논리"(정당성·권위)인가, (3) 개별 사례에서 그대로 베꼈는가(mimicry) 현지 상황에 맞게 변형했는가(modification)
  • 저자들의 결론: 규모(거의 전면적 차용), 정당화 방식(유교적 "도리"·"적절함" 언어), 모방의 형태(수도 설계까지 그대로 복제) 세 기준 모두에서 학습보다 모방이 지배적 메커니즘이었음을 보임
  • 왜 모방했는가(국내정치적 동기): 조정(central court)이 지방귀족(nobility)과의 권력투쟁에서 중국식 제도(과거제, 관료제, 유교 이데올로기)를 수입해 귀족을 제도 안으로 흡수·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 — 이는 North and Weingast(1989)의 유럽형 "계약주의적" 국가형성(귀족이 군주를 제약)과 정반대 방향
3. 프레임

이 논문의 방법론적 핵심은 "반사실적 부재(counterfactual absence)를 증거로 세우는 방식". 즉 "전쟁이 있었다"는 사건이 아니라 "전쟁이 거의 없었다"는 부재 자체를 4세기에 걸친 밀도 높은 사료로 입증해야 하는, 통상적인 인과추론과는 반대 방향의 증명 부담을 진다는 점이 독특함.

(1) 벨리시즘의 세 가지 하위가설을 분해해 각각 개별 반증: 저자들은 벨리시즘 논지를 뭉뚱그려 반박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세 개의 검증 가능한 하위주장으로 쪼갠다. (a) 국가형성이 잘 된 나라일수록 전쟁에서 이긴다(성능 가설), (b) 전쟁이 국가형성의 원인이다(효과 가설), (c) 국가형성이 전쟁의 원인이다(더 강한 국가일수록 더 호전적이다, 원인 가설). 그리고 동아시아 유일의 전쟁 사례인 나당연합의 삼국통일전쟁(660-668) 하나를 세 하위가설 모두에 대한 반증사례로 사용한다: 승자였던 신라는 오히려 삼국 중 가장 "낙후된"(가장 늦게 한화된) 나라였다는 사실이 (a)를 반박하고, 전쟁 전후 수 세기 동안 이렇다 할 제도적 도약이 없었다는 사실이 (b)를 반박하며, 전쟁에서 이긴 당과 신라 모두 승전 이후 영토팽창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c)를 반박. 단일 사례로 세 개의 서로 다른 가설을 각각 다른 논리로 기각하는 구조가 상당히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음

(2) "부재의 증거"를 만드는 사료전략, 밀도와 다각도 인용의 축적: 어떤 것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태생적으로 어렵다(부재의 증명은 항상 "아직 못 찾았을 뿐"이라는 반박에 취약하다). 이에 대응해 저자들은 단일 결정적 증거 대신, 서로 다른 시대·다른 저자의 역사서(사료 자체: 『삼국사기』, 『일본서기』, 『고사기』)와 현대 역사학자들의 종합적 컨센서스(Batten, Holcombe, Seth, Ebrey and Walthall 등 최소 15명 이상)를 겹겹이 쌓아 "이 정도로 폭넓게, 서로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도 전쟁의 흔적이 안 나온다면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라는 방식의 누적적 정성적 입증(cumulative qualitative demonstration) 전략을 취함. Table 1(400-800년 한화 연표)에서 시기별로 제도차용 사건을 촘촘히 나열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전쟁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도 보여줌

(3) 유럽 벨리시즘 문헌 내부의 균열을 이용한 대칭적 비판: 단순히 "동아시아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벨리시즘 문헌 자체에서도 종교(교회)나 모방(Reformation의 확산) 같은 비전쟁적 메커니즘이 이미 지적되어 왔음을 인용(Grzymala-Busse 2020, Gorski 2003)하며 "어쩌면 유럽에서도 모방의 역할이 벨리시즘 문헌이 인정하는 것보다 컸을지 모른다"고 역으로 문제제기. 이는 단순한 지역적 예외 주장이 아니라 벨리시즘 패러다임 자체의 유럽중심적 편향을 정면 지적하는 이론적 전략(에필로그에서 "West versus the rest" 구도 자체를 피하고 싶다고 명시)

(4) 사례 선정의 지리적 재조정과 스코프 확장의 사전 정지작업: 결론부에서 베트남 사례(973년부터 유사한 유교화 패턴)를 짧게 언급하며 "이 논지가 동아시아 전역에 일반화될 수 있다"는 잠재적 외적 타당성을 제시하되, 동시에 몽골·유목민족처럼 중국 문명을 아예 거부한 사례를 대조군으로 배치."중국문명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회에서만 모방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는 조건성(scope condition)을 명확히 못박아, 이 이론이 무조건적 보편이론이 아니라 특정 문화적 조건(Sinic 문명권 내 정당성 공유) 하에서만 작동함을 스스로 제한

4. 데이터·방법
  • 방법론적으로 순수한 정성적 비교역사 연구(comparative-historical analysis). 계량모형이나 통계적 식별전략은 사용하지 않음
  • 핵심 시기구분: Phase 1(BCE 475-221, 중국 통일 전국시대, 기존 문헌이 집중해온 시기) vs Phase 2(CE 400-800, 본 논문이 주목하는 한국·일본의 국가형성기)
  • 주요 사료: 『삼국사기』(1145), 『삼국유사』(13세기), 『일본서기』(720), 『고사기』(712), 왕의 비문(진흥왕 순수비, 568), 헌법·법전(쇼토쿠 태자의 17조 헌법, 다이카 개신, 다이호 율령, 요로 율령)
  • Table 1: 400-800년 한국·일본의 한화(Sinicization) 사건 연표. 조공사절, 불교 도입, 관제·율령 반포, 국립 유교 아카데미 설립, 과거제 시행 등을 연대순 정리, 이 시기 유일한 전쟁(663년 삼국통일전쟁)이 표 안에서 다른 제도적 사건들 사이에 거의 "예외적으로 고립된 점"처럼 위치함을 시각화
  • 세 가지 모방/학습 판별기준을 각 사례(불교, 유교, 율령, 수도설계, 복식)에 개별 적용하며 반복적으로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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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enoni(2020)가 벨리시즘 이론을 비유럽 맥락(라틴아메리카)에 "적용해서 성립함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이론을 구제했다면, Huang and Kang(2022)은 정반대로 비유럽 맥락(동아시아)에 적용했을 때 이론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이론의 지역적 한계를 못박는다. 흥미로운 점은 두 논문이 정확히 대칭적인 방법론적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Schenoni는 "패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살아남았다"는 드문 사건(생존)을 관찰의 기회로 삼아 인과관계를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했던 반면, Huang and Kang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부재 자체를 증거로 삼아야 하는, 통계적으로는 훨씬 다루기 힘든 입증 부담을 진다. Schenoni는 이 부담을 DID·SCM 같은 정량적 반사실 구성으로 해결했지만, 이 논문은 애초에 그런 정량화가 불가능한 영역(1,400년 전 동아시아 관료제 데이터)이므로, 대신 사료의 누적적 밀도와 다각적 교차인용이라는 순수 정성적 방식으로 "부재의 신뢰성"을 구축한다. 이것이 이 논문이 계량모형 하나 없이도 IO 같은 최상위 국제정치학 저널에 실릴 수 있었던 방법론적 정당성의 핵심이며, 동시에 향후 심사에서 가장 많이 받았을 법한 비판(가설검증이 아니라 사료의 나열 아닌가)에 대한 저자들의 응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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