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알키비아데스》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외.
엘리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요즘의 우리는 흔히 뛰어난 지능, 학력, 사회적 배경 등으로 지도자를 선출하곤 한다. 하지만 역사와 철학은 정반대의 경고를 보낸다. 고대 아테네의 '엄친아'였던 알키비아데스는 천재적인 전략가였지만, 플라톤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가장 취약한 점을 찌른다.
"너는 정치를 하기 전에, 너 자신을 아는가?"
그의 실패는 무엇이었을까. 타인을 다스리기에 앞서 자신의 욕망과 무지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기 무지(Self-ignorance)'가 그의 정치를 파괴했다.
이 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접목해본다. 만약 지도자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능력이 출중하다 한들, 그 내면이 '지배하고 싶은 욕구(libido dominandi)'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과 같은 거대 국가조차도 정의가 없다면 '덩치만 큰 강도단(magna latrocinia)'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이는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인물들이 가진 화려한 권력 뒤에 숨은 공허한 자기애를 폭로하는 것이다. 즉, 내면의 성찰이 없는 권력은 타인을 착취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권력을 포기해야 하는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통해 이 딜레마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법'이라는 더 큰 우주적 질서를 파악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아퀴나스에게 정치란 단순히 강자의 야망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공동의 선(Common Good)을 위해 협력하고, 더 높은 차원의 영원한 질서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아퀴나스 식의 정치는 플라톤이 강조한 '내면의 성찰'을 넘어, 아우구스티누스가 비판한 '타락한 지배욕'을 '공동체를 향한 덕(Virtue)'으로 승화시키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정치는 처음에는 '나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는 내면의 거울(플라톤)이어야 한다. 그다음, 그 거울에 비친 욕망이 타인을 해치지 않는지 감시하는 비판의 거울(아우구스티누스)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거울을 너머 공동체 전체의 정의를 비추는 창문(아퀴나스)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자기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타락한 욕망을 절제하며,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너무나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