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국가 역량와 엘리트 경쟁

Garfias. 2018. “Elite Competition and State Capacity Development: Theory and Evidence from Post-Revolutionary Mexico.” APSR 112/2: 339-57.

Mar 25, 2026

국가 역량이 낮은 상태에서 정치적 통치자와 경제 엘리트는 서로를 견제하며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한다. 생산 자산을 장악한 경제 엘리트는 자신들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통치자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통치자가 자신들의 자산을 몰수하거나 수탈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 특히 이들은 통치자가 미래에 자신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행정력이나 조세 체계 같은 국가 역량에 투자하는 것 자체를 가로막는 전략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엘리트의 저항은 국가 기구가 취약한 상태로 머물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나 대공황과 같은 외부적인 부정적 충격이 발생하여 경제 엘리트의 자산 가치가 급락하고 그 세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면 이러한 세력 균형에 균열이 생긴다. 약화된 엘리트는 더 이상 통치자를 효과적으로 위협하거나 국가의 성장을 저지할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통치자는 두 가지 전략적 이득을 취한다. 첫째, 엘리트의 저항이 약해진 틈을 타 그들의 자산을 몰수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공고화한다. 둘째, 방해 세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국가 역량을 키우는 것이 미래에 가져다줄 기대 이익이 커짐에 따라, 통치자는 국가 시스템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본 논문은 국가 역량을 '기반 시설적 권력', 즉 국가가 영토 전역에 침투하여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물리적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를 측정하기 위해 지역별 관료 수와 현대의 지방세 수입 데이터를 활용한다. 실증 분석 결과, 대공황으로 인해 지주 엘리트의 경제적 기반이 크게 약화된 지역일수록 토지 몰수와 재분배가 더욱 강도 높게 일어났으며, 행정 관료의 수도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어, 당시 충격을 받았던 지역들이 오늘날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전쟁이 국가 형성을 이끈다는 기존의 '벨리시스트(Bellicist)'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한다. 찰스 틸리 등의 학자들은 외부 전쟁의 위협이 국가 기구의 발달을 촉진한다고 주장했으나, 전면전이 드물었던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사례에는 이를 적용하기 어려웠다. 본 논문은 외부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도 엘리트 내부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는 '국내적 충격'이 발생하면, 국가가 저역량의 함정에서 벗어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국가 역량의 발달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 기득권 세력의 약화와 그에 따른 정치적 권력의 공고화 과정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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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인간을 이익 극대화의 주체로 상정하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Rational Choice Institutionalism)와 세력 간의 충격이 국가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역사적 제도주의에 뿌리를 둔다. 존재론적으로는 국가를 '선한 통치'의 결과가 아닌, 정치 통치자와 경제 엘리트 사이의 물질적 이익을 둘러싼 전략적 균형 상태로 정의함. 인식론적으로는 대공황이라는 외생적 사건을 실험실의 처치(treatment)처럼 활용하는 실증주의적 준실험 설계를 채택하여, '국내적 분쟁과 기득권의 약화'가 국가 역량의 비약적 발전을 이끈다는 인과관계를 통계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전쟁이라는 외부 변수 없이도 내부 권력 지형의 격변(결정적 분기점)을 통해 국가가 강해질 수 있다는 현대 정치경제학의 정밀한 논리다.

정치적 통치자와 경제 엘리트 사이의 대립 관계가 국가 역량의 수준을 결정한다.

정치적 통치자와 비통치 경제 엘리트(Nonruling economic elite) 사이의 분배적 갈등(Distributive conflict)은 국가 역량 발달을 저해하는 저역량 함정(Low-capacity trap)을 형성한다. 통치자는 조세 징수 능력으로 대표되는 기반 시설적 권력(Infrastructural power)을 강화하려 하지만, 강력한 엘리트는 이러한 역량이 자신들의 자산을 몰수(Expropriation)하는 도구로 쓰일 것을 우려해 투자를 방해한다. 이로 인해 국가는 낮은 역량의 정치적 균형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대공황과 같은 외생적 충격은 경제 엘리트의 자원 기반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켜 이 균형을 파괴한다. 통치자는 이 기회의 창을 활용해 엘리트의 생산 자산을 몰수하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공고화한다. 방해 세력이 사라짐에 따라 통치자는 미래의 기대 이익을 위해 관료조직을 확충하는 등 국가 역량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멕시코 사례는 이러한 결정적 분기점(Critical juncture)에서의 변화가 오늘날의 지방세 수입(Local tax revenue) 차이로 이어지는 장기적 효과를 낳았음을 입증한다.

이 연구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농산물 가격의 외생적 충격으로 활용하여 국가 역량 변화를 분석한다. 1910년 혁명 이후 멕시코 구체제의 국가 기관은 붕괴되었고, 그 빈자리는 지역 군벌과 카시케(Caciques)라 불리는 정치 보스들이 채웠다. 이들은 국가 정치와는 별개로 각 지방 자치체(Municipios) 내에서 토지와 세금이라는 경제적 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기존의 지주 엘리트인 아시엔다 소유주(Hacendados)들과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였다.

혁명 전부터 막강한 부를 쌓았던 지주들은 정치적 실권은 잃었을지언정, 여전히 강력한 경제력과 사설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20년대의 초기 토지 개혁은 분쟁 지역의 농민들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으며, 지주들은 내전의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의 핵심 자산인 대농장을 대체로 지켜낼 수 있었다. 따라서 1930년대 초반까지도 농촌 지역의 주요 부는 여전히 국가가 아닌 지주 엘리트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토지 재분배와 국가 역량 강화는 대공황 이후에야 가속화되었다. 경제적 충격으로 지주의 자원이 감소하자, 지역 정치 보스들은 이 틈을 타 지주의 땅을 몰수(Expropriation)하고 이를 과세 대상인 에히도(Ejidos)로 전환함으로써 지방 정부의 수입원을 확보했다. 즉, 지주라는 경쟁 엘리트가 약해진 결정적 분기점에 정치 통치자들이 토지 개혁을 매개로 관료 조직을 확충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넓혔다는 것이 이 배경 설명의 핵심이다.

비교 항목
카냐다 (Cañada)
산 펠리페 (San Felipe)
나올린코 (Naolinco)
대공황 충격
매우 강함 (잠재 소득 -30%)
강함 (잠재 소득 -20%)
약함 (잠재 소득 -10%)
기존 지주 엘리트
세 가문이 정치·경제 독점
대농장 중심의 강력한 권위
'마노 네그라' 등 강력한 사설 무력 보유
권력 재편 양상
카시케 '프라도'가 행정·군사 장악
지주를 '전복자'로 몰아 고립시킴
지주가 유급 총잡이로 개혁을 폭력 저지
토지 몰수 (가설 1)
성공 (최초의 재분배 시행)
성공 (재분배 면적 8배 증가)
실패 (재분배 면적 1% 미만)
관료 수 변화 (가설 2)
급증 (4명 → 35명)
급증 (15명 → 45명)
완만한 증가 (23명 → 30명)
결과 요약
함정 탈출: 지주 붕괴 후 국가 승리
함정 탈출: 지주 약화 후 국가 승리
함정 지속: 지주 건재로 국가 정체

저자는 대공황이라는 외부 충격과 작물별 재배 적합성이라는 지리적 데이터를 결합하여,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는 완벽한 비교 환경을 구축한다. 이후 이중차분법을 통해 전국적인 변화 흐름 속에서 지주 엘리트의 몰락이 국가 역량에 미친 순수한 인과적 효과만을 정밀하게 추출해낸다.


저자는 국가 역량을 기반 시설적 권력(Infrastructural power)으로 정의한다. 이를 측정하기 위해 자치체별 정부 관료의 수를 핵심 지표로 삼는다. 국가가 정보를 수집하고 법을 집행하며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행 요원이 필요하며, 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 자체가 국가의 비용 든 투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관료의 절반이 치안과 조세 징수 업무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은, 관료 수의 증가가 곧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과 자원 추출 능력이 실질적으로 커졌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자산 몰수를 측정할 때 저자는 단순히 재분배된 토지의 면적만을 따지지 않고, 용수 접근이 가능한 토지(Irrigated land)에 주목한다. 물 공급이 원활한 비옥한 땅은 대농장인 아시엔다(Haciendas)의 생산적 핵심이자 지주들이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변두리 땅을 뺏는 것은 지주의 권력에 타격을 주지 못하지만, 이 핵심적인 '노른자 땅'을 몰수하는 것은 지주의 경제적 저항 능력을 영구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따라서 이러한 고가치 토지의 재분배 데이터를 통해 통치자가 지주 엘리트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압했는지 확인한다.

이 연구는 1930년대의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었는지, 아니면 국가의 체질을 바꾼 사건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1세기 현대의 데이터까지 연결한다. 1930년대에 지주가 망하고 행정망이 깔린 지역이 2000년대에도 여전히 많은 관료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 멕시코의 지방세 수입(Local tax revenue)이 상대적으로 높은지를 분석한다. 이는 과거 지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세무서를 세우고 장부를 관리하기 시작한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행정 효율성 차이로 고착화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FAO의 정밀한 지리 기후 데이터와 1940년 당시의 역사적 지도를 결합한다. 분석의 핵심은 단순히 과거의 생산량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자치체(Municipios)의 토양과 기후에 따른 작물 적합성(Crop suitability)을 바탕으로 지주들이 입었을 잠재적 타격의 크기를 과학적으로 추정하는 데 있다. 또한, 1930년 인구 조사 기록을 통해 실제 대농장(Hacienda)이 존재했던 지역만을 선별함으로써 '정치 통치자 대 지주 엘리트'라는 분쟁적 구도가 실재했던 환경을 정밀하게 구축한다. 여기에 인구 밀도나 도시화율 같은 변수들을 통제(Control)한다.

통계 분석 결과, 지역 경제(지주)가 입은 타격과 국가 역량의 성장은 명확한 음(-)의 관계를 보인다. 즉, 대공황으로 인해 지주의 주머니가 털린 정도가 심할수록, 그 지역의 관료 수는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는 지주라는 '방해물'이 사라진 빈자리를 국가 행정력이 채웠음을 수치로 입증한다.

단순히 "늘어났다"는 수준을 넘어 그 규모가 상당하다. 평균적인 자치체에서 지주가 큰 타격을 입었을 때, 행정 요원이 약 18명가량 추가로 배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는 기존 행정 규모를 고려할 때 국가의 지배력이 수직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늘어난 관료들은 구체적인 예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추가된 인력의 대부분은 세금 징수원과 경찰이었다. 이는 국가가 지주를 제압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돈(세금)을 걷고' '물리적 질서(치안)'를 잡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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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은 1930년대의 일시적 경제 충격이 70년 넘는 행정적 격차로 고착된 정치적 전달 기제를 규명한다. 대공황으로 지주 엘리트가 몰락한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한 지역 보스(Caciques)들은 신생 제도혁명당(PRI) 정권에 핵심적인 정치 파트너가 되었다. 이들은 지주의 저항 없이 지역 질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고, 중앙 정부는 전국적 안정을 위해 이들에게 독점적인 지역 자원 추출권을 허용하는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초기 구축된 관료 기구는 지역 보스들의 권력 기반으로 활용되며 장기간 유지 및 강화되는 경로를 밟게 된다.

지역적 국가 역량의 성장은 단순한 행정 수치 증가를 넘어 중앙 정계로의 인적 진출 경로와 결합한다. 1940~1976년 사이의 정치인 전기 자료 분석 결과, 대공황기 충격이 컸던 자치체 출신 인물들이 중앙 정계의 국회의원, 장관, 대법관 등 고위직을 유의미하게 더 많이 차지했음이 증명된다. 이러한 정치적 재생산은 강한 지방 행정력이 지역 파벌의 권력 자산이 되고, 이들이 다시 중앙 권력을 장악하여 고향에 제도적 보호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결국 1930년대의 경제적 우연은 멕시코 코포라티즘 체제 내에서 지리적 기득권으로 굳어지며 현대까지 지속되는 제도적 격차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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