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로크와 국제적 개입의 윤리

Lee Ward, “Locke on the Moral Basis of International Relation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50, No. 3: 691-705 (2006)

Nov 26, 2025
로크와 국제적 개입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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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는 국제관계를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보지 않고, 국가들도 자연법과 기본 규범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느슨한 국제사회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각 국가의 자치를 존중하되(플루럴리즘), 심각한 억압이나 공격이 있을 때는 다른 나라가 개입해도 정당할 수 있다는 연대주의적 입장도 함께 인정한다. 식민주의 논란이 있지만, 로크의 자연법 논리는 무제한 정복을 허용하기보다 오히려 정복·전쟁·개입을 엄격한 도덕 기준 아래 놓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로크는 국제관계를 영구적인 자연상태로 규정하면서도, 이 상태가 단순한 무정부적 혼란이 아니라 자연법과 국제 관습이 일정한 규범적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라고 본다. 자연법의 핵심인 비침해 원칙(nonaggression)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적용되며, 타인의 생명·자유·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는 정당한 응징의 대상이 된다. 이 원칙은 전통적 ‘불간섭’ 논리와 다르게, 공격자에 대한 응징전, 개입, 심지어 정당한 정복을 허용한다. 로크에 따르면 독립된 공동체들은 자연상태에 머물지만, 그러한 조건에서도 도덕·법적 책임을 지며 자연법의 집행자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주권을 절대적·불가침의 원리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의 지배적 주권 이론과 다르다. 로크는 주권을 공동체 구성원의 동의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권위로 보되, 자연법과 정의라는 더 상위의 규범이 이를 제한한다고 본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주권국가의 집합’이 아니라, 자치(self-government)를 기반으로 한 사회들 간의 규범적 관계망으로 이해된다. 로크의 구상에서 국제사회는 법적·정치적 결합체는 아니지만, 자연법과 관습에 근거한 도덕적 규율이 가능한 사회적 공간이며, 이를 통해 오늘날의 국제규범·개입 정당성·전쟁 윤리에 대한 논쟁을 선취적으로 비춘다.

로크에게 국제적 자연상태는 독립 공동체들의 자연적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하지만, 이는 전통적 의미의 ‘주권’과 동일하지 않다. 그는 ‘주권’ 대신 법적 우월성(legal supremacy)을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며, 최고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신탁적 권위이지 절대적 주권이 아니다. 따라서 독립 공동체는 외부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주권적이지만, 자연법의 규범 아래 놓인다는 점에서 주권의 절대성은 부정된다. 특히 자연법이 허용하는 정당한 전쟁과 정복은 ‘불침해 주권’을 약화시키며, 로크는 전쟁·정복·처벌의 문제에서 전통적 주권론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로크의 정당한 정복 이론은 세 가지 방식으로 주권의 우위를 무너뜨린다. 첫째, 로크는 실제 역사에서 정복이 종종 두 집단의 통합을 낳았음을 인정하며, 이는 ‘동의 없는 정부’가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정복이 새로운 정치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둘째, 전쟁 책임을 실제로 공격을 지지·동의·참여한 사람들에게만 제한하지만, 이 범위는 좁게 잡아도 최고 권력자들, 넓게 잡으면 상당수 시민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는 ‘국민 전체는 무고하다’는 주권적 일체성 개념을 약화시킨다. 셋째, 로크는 극단적 경우 모든 남성 구성원이 전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보면서도, 여성·아이·재산 상속권은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정복이 정치적 독립을 잠정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society) 자체의 존속·재구성 가능성은 끝까지 남긴다.

이 모든 논리를 종합하면, 로크의 국제관은 주권국가들의 질서가 아니라 ‘자치하는 사회들(self-governing societies)’로 구성된 국제사회이다. 자연법은 공동체의 정치적 독립을 조건부로 인정하며, 인도적·정당한 개입을 허용한다. 동시에 국제 관습 (특히 영토 인정, 조약, 묵시적 상호 승인)은 국제사회를 결속시키는 규범적 기반을 형성한다. 이 틀에서 정복은 처벌일 뿐 통치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annexation이나 예방전쟁은 국제사회의 도덕 질서를 훼손하기 때문에 금지된다. 즉 로크는 국제적 자연상태를 무정부적 경쟁이 아니라 자연법·관습·상호 승인으로 구성된 규범적 사회로 이해하며, 이는 현대 국제사회에서 주권·개입·영토·정복 논쟁을 선취적으로 보여주는 사상적 기반을 형성한다.

많은 비평가들은 로크가 자연법의 ‘비침해’ 원칙과 사유재산 정당화를 이용해 식민 확장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해 왔다. 특히 로크가 경작되지 않은 ‘황무지(waste land)’를 누구나 점유할 수 있다고 한 점, 경작의 생산성 향상을 ‘인류 전체의 이익’으로 묘사한 점, 저항하는 원주민을 공격자로 간주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이 이러한 해석을 낳았다. 그러나 로크의 국제사회 개념 (즉 자치하는 사회들은 정복되더라도 고유한 권리와 지위를 유지한다는 주장) 를 적용하면 이러한 비판은 일면적인 측면이 있다. 로크는 토지 미경작을 자연법 위반으로 보지도 않고, 정복자의 토지 점유나 무제한적인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연법의 응징 논리는 오히려 유럽의 전제군주(예: 루이 14세)를 겨냥한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결국 로크의 논리는 식민주의를 직접 정당화하기보다는, 당시의 화폐경제·토지 이용 방식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한된 형태의 ‘미점유지’ 주장만 허용하는 구조였다.

로크의 결론적 논지는 국제관계를 주권 질서가 아니라 자치하는 사회들의 국제사회로 파악하는 데 있다. 로크는 국제사회가 각 사회의 자치와 불간섭을 존중해야 한다는 플루럴리스트(다원주의적) 입장을 가지면서도, 자연법이라는 보편적 도덕 기준에 따라 심각한 불의에는 개입할 수 있다는 솔리다리스트(연대주의적) 입장도 동시에 인정한다. 자연법은 자기보존을 우선하지만, 인류 보존의 명령도 부과하며, 이는 제3자의 개입·구호·심지어 인도적 개입까지 정당화할 여지를 남긴다.

로크는 “그리스가 터키에게 지배당한 사례”처럼 외부 도움이나 해방전쟁이 정당할 수도 있다고 암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들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까지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외부로 침략하는 전쟁이나, 내부에서 국민을 억압하는 행동을 모두 자연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 논리를 확장하면, 소수자 탄압·대규모 인권침해·대참사 같은 경우에도 국제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로크는 현실에서는 국제 규범을 만들기 어렵다고 보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국제사회도 더 도덕적으로 발전해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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