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근대 주권 개념에 대하여

박상섭. “근대 주권 개념의 발전과정.” 『세계정치』 25집 1호(2004)
Sep 13, 2025
근대 주권 개념에 대하여

서론

  • 인간생활과 관련된 다른 모든 제도들이 그렇듯이 국가 주권 개념에 입각한 근대 국제질서도 분명히 역사적 산물이다. 기본적으로 서유럽에서 일정한 역사적 연관 속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정치제도 또는 질서이다.
  • 주권 개념은 그 내용의 호소력이 크기도 했으나, 지금까지는 강력한 대안이 출현하지 않았고 19세이 중반 이후 민족주의의 강세와 더불어 지속성을 가지고 유지되었다.
  • 이 글은 주권 개념이 갖고있는 역사적 성격을 해명하고자 함

주권개념의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일반적 고려사항: 개념과 전사(前生)

  • 최고 통치권을 주권이라는 명백한 개념으로 제시한 것은 장 보댕으로, 자신의 논의가 로마법 사상에 뿌리를 두고는 있으나 주권 개념이 모든 정치공동체에 공통적인 현상이기에 로마적 연관으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함
  • 서양사에서 근대 주권개념과 가장 비슷했던 개념은 로마 제국의 최고 지배권 개념이었을 것임 (황제 율피아누스, 통치자는 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 황제는 시민에 의해 선출!! (주권자는 당시 ‘자유민’인 시민의 대표기관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지, 혈연 승계는 이후 등장함)
  • 하지만 비잔틴 제국은 로마제국에서 물려받은 단일국가 개념과는 상이한 행로를 걸었음. 서유럽 지배질서도 상당히 분권적인 지방 왕국들에 의한 것이었음.
  • 양검론에 의해 왕이 교황에게 도전하기도 함 (양검론: 하나님의 법이 시행될 수 있는 것은 교황, 세속군주에 의해서다)
  • 중세 유럽에서는 군주와 귀족들이 서로 견제·협력하는 과정에서 교황청의 권위가 강화되었고, 법은 근대처럼 주권자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한다고 여겨진 질서를 발견·확인하는 형태였음.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주권자가 법을 제정한다”는 개념은 중세에는 성립하지 못함 (당시는 하나님만이 주권자고 교황은 대리인, 그 아래로 수직적인 위계질서 하에 하나님의 질서를 구현하는 사람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과 천자)

근대적 주권 개념을 위한 준비

  • 중세에 들어 교황과 황제의 갈등관계가 시작되면서 교황청은 단순한 종교 조직을 넘어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법적 장치가 필요했다. 이에 교회 법학자들이 로마법의 논리와 개념(예: 권위의 본질, 재판 절차, 법률의 개념)을 교회법 연구에 끌어다 씀.
  • 종교개혁에 따라 개신교에서는 성령의 존재가 하나님과 개인을 연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군주의 권한이 강화되는 기반이 됨
  • 12세기 말부터 교황청은 지역 왕국의 독립성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국왕은 자신의 왕국 안에서는 황제다(황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군주의 권한 인정” 라는 공식이 굳어지기 시작함 (하나님의 법 - 섭리 - (세속)실정법 / 실정법은 군주가 관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는 기본적인 갈등관계, 황제와 교황과도 갈등관계))
  • 이는 일정 지역 내에 한정되는 최고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권위체와의 대외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음
  •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치이론 (13세기~15세기) 즉 기독교적 우주관에 따라 다양한 권위체들의 위계질서로 구성되는 조화로운 단일 세계의 모습은 꽤 오래 유지되었음

근대 주권이론의 탄생: 보댕과 홉스

  • 주권 이론은 왕이 권력을 얻은 “결과”라기보다, 왕과 귀족 사이의 권력투쟁 속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
  • 7명의 선제후가 독일 왕을 선출하고, 독일 왕(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겸) 과 프랑스왕은 동일한 지위이면서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 발생. 프랑스 왕은 주권개념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이 갈등관계에 있었던 상황에서 프랑스 왕이 교황의 편에 섰기 때문임.
  • 세속군주가 되는 것은 왕권신수설(하나님으로부터 권위가 온다)에 의한 것
  • 프랑스의 16세기 후반 신구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무정부상태에서 장 보댕의 국가론은 혼돈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음. 그는 절대적 권위의 승인만이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그 권위는 주권으로서 법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 그에 따르면 주권의 핵심은 백성들의 동의 없이 백성들에게 법을 만들어주는 것
  • 이후 토마스 홉스는 기본적으로 자연법 논의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이 그 자연권의 주장을 포기할 것을 명령하는 자연법의 개념을 도출함 그리고 그것이 다시 논리적으로 자연공법인 주권이론으로 귀착됨

대외적 주권

(1) 국제사회의 부인자들

  • 근대적 국제관계는 평등한 관계에 있는 주권적 정치단체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단일 제국 관념에서 넘어오는데 시차가 존재했음
  • 장 보댕에 이어 홉스와 스피노자는 국가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자연법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권위체가 없기때문에 국제법의 존재를 부인한다.

(2) 국제사회의 이론가들

  • 그로티우스는 국가간 조약 준수의 의무 같은 공통이익이나 가치가 있을 경우 이들 사이에는 사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함
  • 그로티우스는 주권국가 시대에도 자연법이 기본이 되며, 국가 간 합의로 만든 실정법도 국제법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를 ‘대인류사회’ 개념으로 설명했고, 후대 학자들은 이를 발전시켜 국가들이 협력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제 질서를 강조
  • 각국의 주권은 평등하기 때문에 세력균형이라는 개념도 탄생함

결론: 근대 국제정치질서의 제일 도덕원리로서의 주권

  • 유럽에서 주권의 개념이 명확해진 것은, 각 근대국가가 개별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정치조직들과 무력경쟁을 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임 (배타적 지배영역의 관념)
  • 보편적 정치권위로서의 황제의 위신은 감소하였지만, 그 자체에 대한 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