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가장 적극적으로 통합을 주도하였고, 경제적으로 개방적인 베네룩스 3국과 이탈리아도 이에 동참하였다. 반면, 영국은 초국가적 권한 이양에 소극적이었으며 대서양 동맹과 독자적 노선을 우선시하였다. 드골 대통령 시기의 프랑스 또한 유럽위원회의 권한 확대에는 반대하며 국가 주권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이 공유한 공동의 이해는 분명하였다. 전쟁 재발 방지와 안보 보장, 단일시장을 통한 경제 성장,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서유럽의 정치적 안정과 자율성 확보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유럽은 반발과 주저 속에서도 점진적으로 통합을 심화시켜 오늘날의 유럽연합에 이르게 되었다.
유럽통합은 직선이 아니라 멈춤–진전의 사이클(stop-and-go)로 진행된다고 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변증법적 기능주의(dialectical functionalism)의 핵심 메커니즘은 이렇다: 한 정책 분야에서 통합이 진전되면 이익을 잃은 국내 집단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인접 정책 영역을 보호하도록 만들고, 각국은 그쪽으로 국가 개입을 이동시킨다(정지 단계). 그러나 이렇게 영역별로 개입이 커지면 국가 간 정책 경쟁이 심화되어 비용만 커지는 자기패배적 상황이 되고, 결국 정부들은 그 비용을 피하기 위해 다시 EU 차원의 공통 규칙과 통합으로 돌아선다(진전 단계). 이때 국가는 자국 이익집단과 맞서는 연합을 유럽 수준에서 형성한다.
이 접근은 신기능주의/초국가주의처럼 연쇄효과가 곧장 확산으로 이어진다고 보지도, 정부간주의처럼 국가 선호와 교섭만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국가–EU 집행기관–이익집단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내부 동학이 사이클을 구동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EU는 권한을 얻지만 회원국의 힘을 제로섬으로 잠식하지는 않으며, 국가가 EU를 지렛대로 활용해 국내 저항을 조정하고 정책 역량을 질적으로 확장한다고 본다.
구분 | 신기능주의 (Neofunctionalism) | 초국가주의 (Supranationalism) | 정부간주의 (Intergovernmentalism) | 국내정치 접근 (Domestic Politics) |
분석 초점 | 비국가 행위자 (EU 집행위, 이익집단) | 국가(정부) + EU 제도 (의사결정 시스템) | 국가(특히 강대국 정부) | 각국 국내정치 구조·이해관계 |
핵심 개념 | 기능적 연계 (functional linkages), 스필오버(spillover) | 패키지 딜(package deal), 사안연계(issue linkage), 협상 반복 → 학습 효과 | 주권(sov.) 유지, 정책 선호의 수렴(convergence) | 국내 선호가 EU 정책을 규정 |
정부 역할 | 소극적·반응적 (이익집단 요구를 따라감) | 공식적 결정자는 정부지만, 최종적으로는 EU 의사결정 절차에 종속 | 적극적·주도적 (국가가 최종 결정권 보유) | 국내 이해관계와 정치 제약을 조율 |
EU 제도의 역할 | 촉진자·중재자 (집행위 주도) | 핵심 중재자·설계자 (특히 집행위 중심) | 도구적 역할 (국가가 필요할 때 활용) | 국내 선호 반영의 무대 |
예측 결과 | 장기적으로 초국가 공동체 형성 | 국가 이해관계를 넘어선 공동 정책 창출 | 국가가 여전히 중심, EU는 국가 생존 보조 장치 | 국내 상황이 맞아떨어질 때만 제한적 통합 |
강점 | 통합 진전의 동학(dynamics) 설명 | 제도적 절차·타협 과정 설명 | 통합 정체(stagnation) 설명 | 각국 정책 선택의 배경 설명 |
한계 | 국가의 자율성·시간 지연 설명 부족 | 왜 성공·실패가 교차하는지 불충분 | 선호 수렴 원인 불명확, EU 영향 과소평가 | 여러 나라에서 동시적 선호 수렴 설명 불가 |
따라서 통합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까지 포함하는 상호작용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며, 회원국·EU 제도·이익집단이 모두 제약과 기회의 구조 속에서 맞물리며 변증법적으로(dialectically) 발전한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 틀은 EU 제도와 회원국을 모두 중요한 주체로 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혼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본다. 유럽통합은 ① 통합 결정을 내림 → ② 각국이 잃은 권한을 메우려고 다른 분야에 개입 강화 → ③ 그 경쟁이 서로에게 손해가 됨을 깨달음 → ④ 다시 EU 차원의 통합을 요구하는 식의 순환으로 진행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통합이 멈췄다가 다시 진전되는 흐름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왜 각국이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EU 차원의 통합으로 되돌아오는지, 즉, 왜 그냥 국내 정책 조정으로 끝내지 않는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각국의 내부 정치와 이해관계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 한 분야에서 통합이 이루어지면, 회원국은 인접 분야에서 EU의 개입을 막으려 하고 국가 자율성을 지키려 한다.
- 인접 분야에서는 국가 개입이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국가 간 정책 경쟁이 심화된다.
- 이 경쟁이 역효과를 내면, 회원국들의 정책 선호가 수렴하고, 결국 더 많은 통합을 요구하거나, 유럽위원회의 제안에 동의하게 된다.
변증법적 기능주의는 이익집단의 역할을 신기능주의보다 복잡하게 본다. 특정 정책 분야가 EU 통합으로 국가 개입에서 벗어나면, 그 분야에 의존하던 이익집단은 힘을 잃고 유럽 차원에서 연합을 형성한다. 동시에 이익집단은 인접 정책 분야로 이동해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면서, 국가들이 EU의 간섭을 막고 자율성을 지키려는 반작용을 촉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같은 국내 개입과 정책 경쟁이 서로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생기고, 결국 다시 통합을 요구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EU와 회원국은 때로는 이해가 충돌하지만, 때로는 특정 이익집단을 제어하기 위해 이해를 같이하게 된다.
그 결과 EU는 초국가적 국가도, 단순한 정부 간 체제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로 이해된다. EU는 국가의 공식적 자율성을 제한하면서도, 각국이 새로운 정책 수단을 모색하도록 유도하고, 정책 경쟁을 억제하거나 허용하면서 국가들의 선호를 수렴시킨다. 또한 국내 권력 지형을 변화시켜 어떤 집단은 힘을 잃고 또 다른 집단은 힘을 얻는 역동을 반복한다. 결국 EU는 무한정 확대되거나 붕괴하지 않고, 제한된 통합을 주기적으로 이어가는 독특한 정치 질서를 만들어내며, 이는 국가들이 여전히 주권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틀 안에서 협력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1960년대 말 공동시장이 완성된 뒤, 회원국들은 유럽 차원의 더 깊은 통합보다는 자국 이익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관세가 없어지자 새로운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이 등장했고, 각국은 불황에 대응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일종의 보조금 경쟁에 빠졌다. 동시에 관세 철폐로 기업이 임금에 민감해지자 노조가 힘을 얻었고, 정부가 개입해 임금 억제 대신 복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노사정 협의(tripartite bargaining)가 강화되었다. 이처럼 공통시장이 진전됐지만, 실제로는 국가 개입과 보호주의가 확대되면서 유럽 차원의 통합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1970~80년대 이런 정책은 점점 역효과를 드러냈다. 보조금 경쟁은 비효율만 키우고, 비관세 장벽은 역내 무역과 대외 경쟁력까지 떨어뜨렸다. 복지와 임금 문제에서는 노동조합의 반대에 막혀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결국 각국은 국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EC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85년 발표된 단일시장 백서(White Paper)는 국가 간 정책 경쟁의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규칙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철강산업 보조금 규제 같은 조치도 유럽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이 과정은 변증법적 기능주의의 순환 구조를 잘 보여준다. 통합이 이루어지면 각국은 인접 영역에서 개입을 늘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개입이 역효과를 내면서 결국 다시 유럽 차원의 통합 요구가 커진다. 노조나 산업 단체 같은 이익집단은 국내에서 힘을 발휘하다가 불리해지면 유럽 수준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ETUC(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 같은 조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회원국들은 일부 권한을 양도하면서도 새로운 정책 수단을 얻었고, EU는 국가 주권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으면서도 점차 새로운 거버넌스 형태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부터 EC(유럽공동체)는 공공조달(public procurement) 시장을 개방하려 했지만 에너지·교통·수도·통신 등 주요 부문은 제외되고 허점도 많아 효과가 미미했다.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공공조달에서 외국 기업이 수주한 비율은 2%에 불과했고, 보호주의는 여전히 강했다. 1990년 공공사업 조달 지침이 채택되면서 투명성과 경쟁 확대가 강조되었으나, 회원국들은 협상절차·제한절차 등을 유지하며 여전히 자국 기업을 우대할 수 있었고, 실제 국제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들은 비용 절감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지역 기업과의 유착을 유지했고, 이는 국가정부와 EU 집행위가 연합하여 이익집단(발주기관·업체)의 저항을 누르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개방 확대는 노동시장 문제로 번졌다. 북유럽 건설노동조합들은 남유럽 저임금 노동자들이 수혜자가 될 것을 우려해 ‘사회적 조항(social clause)을 지침에 포함시키려 했고,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과 유럽의회가 이를 지지했다. 초안에는 고용조건 정보 제공 의무와 사회적 기준을 반영한 조항이 포함됐지만 최종안에서는 삭제되었다. 이후 노조들은 각국 법률에 고용조건 정보조항(information clause)을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고, 더 나아가 외국 파견근로자(posted workers)에게도 자국 노동자와 같은 임금·조건을 적용하려고 했다. 덴마크·독일·프랑스 등은 이에 동조하여 외국 기업이 자국 단체협약을 따르도록 강제하거나 법제화했으며, 이는 사실상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보호주의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공공조달 지침은 국제 경쟁 촉진보다 국내 노동 기준과 고용 조건 보호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각국 정부는 원래 “비생산적 지출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시장을 개방했지만, 실제로는 외국 경쟁을 견제하고 자국 노동 관행을 지키는 방향으로 활용했다. 이에 대응해 EU 집행위는 파견근로 지침(directive on posting of workers)을 제안했으나, 예외 기간(1개월~1년)을 두고 북유럽과 남유럽·영국 간 이견이 갈리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전형적인 변증법적 기능주의(dialectical functionalism)의 사례로, 통합 시도 → 국가별 반작용 → 사회·노동단체 개입 → 새로운 교착 → 향후 다시 통합 압력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패턴을 잘 보여준다.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 이후 유럽통합은 흔히 “위기(post-Maastricht crisis)”로 불렸지만, 이는 위기가 아니라 일시적 정체에 불과하다. 회원국들은 언제나 자국 산업과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인접 정책 영역에서 주권을 방어해왔고, 이런 반작용은 통합 과정의 정규적 패턴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집행위(Commission)의 최근 백서(White Paper)들도 매우 신중하고 제한적이었는데, 사회정책 백서에서는 야심을 낮추고, 성장·고용·경쟁력 백서에서도 유럽 차원의 전략이 아니라 국가별 정책 틀만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런 신중함은 실패나 붕괴가 아니라, 격화된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숨 고르기 단계(pause)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가설이 반증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어떤 영역을 인접 영역(adjacent policy area)으로 볼 것인가?”, “언제 정책 경쟁(policy competition)이 역효과(counterproductive)를 낳는다고 판단할 것인가?”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예컨대, 통합 후 인접 영역에서 국가 개입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가설은 반박될 수 있다. 또한 다수 회원국이 동일하게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통합이 진행된다면, “개입 → 경쟁 심화 → 통합”이라는 논리 역시 흔들린다. 구체적으로 국내 압력(interest group 영향력), 인접 영역의 거리, 개입의 성격(보조금·사회기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조건들을 명시하면 향후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 같은 이슈에서 북부 회원국이 고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집행위와 함께 새로운 사회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즉, 통합은 단순히 전진이나 후퇴가 아니라, 행동과 반작용이 반복되는 구조적 순환 과정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이론은 강조한다.
-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방지”라는 문제의식.
- 정치·군사 통합은 어렵지만, 기술·경제·사회 분야 같은 ‘비정치적 기능’의 협력부터 시작하면 된다.
- 국제기구가 실제 효용을 제공하면(항공, 통신, 우편, 보건처럼 국경을 넘는 문제), 국가들은 점점 더 많은 권한을 이 기구에 위임한다. → 협력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결국 정치적 통합까지 이어질 수 있다.
2. 신기능주의 (Neofunctionalism, Ernst Haas 중심, 1950s~1970s)
-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로마조약(EC/EEC)의 실제 경험 반영.
- Spillover(파급효과) 개념 정교화
- 기능적 spillover: 한 분야의 통합이 다른 분야로 확산.
- 정치적 spillover: 이익집단·엘리트들이 유럽 차원으로 로비 이동.
- 제도적 spillover: 유럽기구(Commission, Court)가 권한을 확대
- 국가와 국내 이해집단 모두 주요 행위자로 설정.
- EC/EU 같은 지역주의 통합 모델에 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