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의 《리바이어던》(1651)은 감각과 상상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에서 출발해, 인간을 욕망과 공포, 명예심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규정한다. 이 전제는 평등에서 불신으로, 불신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자연상태를 설명하는 토대가 된다. 자연법은 평화를 추구하는 이성의 규칙으로 제시되지만, 주권자의 강제력이 보장될 때에만 현실적 효력을 지닌다. 정의를 “계약 준수”로 환원하고 인격을 “대표성을 인정받은 주체”로 정의한 것도, 정치 질서가 자연적 산물이 아니라 인위적 구성물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홉스에게 질서는 언제나 대표와 강제를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본문을 두고 국제사상사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길로 홉스를 평가한다. Armitage(2013)는 “국제적”이라는 범주 자체가 근대 초기에 구성된 개념임을 강조하면서, 국제사상을 정치사상사의 한 부분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홉스의 저작을 단순히 ‘국제정치학의 선구자’라기보다, 당대의 정치적·법적 담론이 어떻게 국제라는 범주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는다. Bain(2019)은 홉스를 국제정치학에서 흔히 소비되는 ‘아나키의 철학자’로 읽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홉스의 무정부 개념이 신학적 유명론 전통, 특히 “의지와 언어로 구성된 질서”라는 신학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국제 질서도 단순한 권위 부재가 아니라, 특정한 지적·종교적 유산이 낳은 산물이다. Boucher(1998)와 Malcolm(2002)역시 현재 홉스가 교과서적으로 단순화된 현실을 비판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홉스가 개인과 국가의 자연상태를 결코 동일시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개인은 무력하고 쉽게 파괴될 수 있지만, 국가는 집합체로서 훨씬 강력한 방어 수단을 가진다. 따라서 국제관계는 끊임없는 실제 전쟁이라기보다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불안정한 질서다. Tuck(1999) 역시 한발 더 나아가 홉스가 국가의 전쟁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자연법을 통해 이를 제약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홉스는 “전쟁할 권리”와 “평화를 위한 규범”을 동시에 생각해 냈고, 국제관계는 이 두 요소가 공존하는 복합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Williams(2010)는 홉스의 국제사상에 대한 해석을 세 가지 전통으로 구분한다. 첫째, 현실주의 전통은 홉스를 개인과 국가를 단순히 동일시한 사상가로 이해한다. 개인이 자연상태에서 불신과 경쟁 속에 살아가듯, 국가도 국제사회에서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홉스가 자율적 개인을 실제 존재로 전제했다는 잘못된 해석이다. 사실 홉스에게 ‘자율적 개인’은 현실의 인간상이 아니라, 사회계약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된 개념적 장치였다. 둘째, 국제사회 전통은 홉스가 국가 간 사회계약을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법과 외교적 관습, 규범을 통해 국가들 사이에 일정한 사회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정치신학 전통은 슈미트와 스트라우스를 거쳐 홉스를 주권과 결단, 그리고 적대의 사상가로 읽으며, 근대 주권론의 출발점으로 강조한다.
Williams는 이 세 전통이 각각 나름의 통찰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모두 홉스를 자기 목적에 맞게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한다. 그의 판단에 따르면 홉스의 사상의 핵심은 전쟁 상태의 묘사나 주권자의 결단 자체가 아니라, 지식이 불확실하고 언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권위가 어떻게 질서를 성립시킬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렇다면 국제정치학 교과서가 여전히 홉스를 ‘아나키=전쟁’의 원형으로 불러내는 것은, 어쩌면 학문적 자기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서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홉스를 단순한 아나키론자가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사상가로 읽는다면, 현실주의의 자기 정당화 서사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홉스의 인격 개념을 확장해 본다면, 오늘날 국제기구나 다국적 기업, NGO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들도 인위적 인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국제정치이론에서 국가 중심성을 전제로 해온 현실주의와 홉스적 인격 개념은 충돌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또한 홉스가 전쟁 상태를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규범적 질서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그를 “아나키의 철학자”가 아니라 “질서 창출의 철학자”로 재독해할 수 있다. 그렇게 읽을 때 국제정치이론이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단순히 권위 없는 세계에서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갈등 속에서도 규범과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홉스를 ‘설명력’이라는 이유로 희생시켜, 무정부 상태의 상징적 이론가로만 소비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홉스를 통해 불확실성·언어·권위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사유하는 편이, 지금의 국제정치학에 훨씬 풍부한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홉스적 무정부론”은 과거 학문 체제에서는 유용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단순화이자 학문적 짐에 불과하다.
참고자료
Malcolm, N. (2002). Hobbes’s theo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In N. Malcolm(Ed.), Aspects of Hobbes (pp. 432–456). Oxford: Clarendon Press.
- 홉스는 흔히 ‘무정부=전쟁’의 상징적 이론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17세기 국제법 논쟁에서 분명히 자연법론자에 속했다. 그는 개인 사이의 자연상태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동일시하지 않고, 다만 공통 권위가 부재하다는 점에서만 두 상황을 비교했으며, 따라서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동일한 자연법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 자연법은 “평화를 추구하라, 계약을 지켜라”와 같은 이성이 발견한 계율들(총 19개)로 구성되며, 무제한적 자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만을 허용한다.
- 홉스에게 전쟁은 인간 존재의 최악 상태였고, 힘과 속임수를 언급한 구절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며, 전쟁을 덕목으로 미화한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국가를 안전한 욕망 추구의 틀로 파악했다. 비록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이었지만 그는 개선 가능성을 인정했고, 국제협력을 그 수단으로 보았기에 단순한 냉혹한 현실주의자라기보다 개선주의적 합리주의 전통에 더 가깝다. 다만 홉스의 자연법은 인류 전체의 선을 지향하지 않고, 철저히 개인의 자기보존에서만 도출된다는 점에서 스토아학파, 스콜라 철학, 로크적 자연법과는 구별된다.
Bain, W. (2019). Rethinking the legacy of Thomas Hobb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25(2), 343–365.
- 홉스는 신학적 개념을 세속 정치철학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는 주권자의 절대 권력으로, 신적 창조 질서는 사회계약을 통한 코먼웰스의 질서로 전환되었으며, 자연법은 인간 이성이 발견한 자기보존의 규칙으로 설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단순한 현실주의라기보다는 중세 신학적 긴장이 세속 정치철학으로 변환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세계 질서를 전능한 하나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설명했던 중세 명목론의 영향이 홉스의 사상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