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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은 하나인가? 초법적 주권과 유기적 주권의 귀환

Paris, Roland. 2020. "The Right to Dominate: How Old Ideas About Sovereignty Pose New Challenges for World Order." International Organization 74(3):453-489.
Sep 14, 2025
주권은 하나인가? 초법적 주권과 유기적 주권의 귀환

냉전 이후 국제관계학은 세계화와 국제 제도 확산으로 인한 국가 주권의 약화를 강조해왔으나, 최근에는 주권의 복귀가 두드러지고 있다. 트럼프의 대선 구호, 브렉시트, 중국과 러시아의 NGO 규제, EU 내 난민 정책 반발 등은 베스트팔렌식 주권(Westphalian Sovereignty)의 부활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초법적 주권(Extralegal Sovereignty)과 유기적 주권(Organic Sovereignty)의 재등장도 함께 이루어졌다. 초법적 주권은 지도자가 국내외 제약을 넘어서는 권력을 뜻하고, 유기적 주권은 민족과 지도자 간의 준신비적 결속(quasi-mystical connection; 예를 들어, 러시아의 “러시아 민족과 푸틴의 일체화”나, 중국의 “중화민족 부흥과 당(黨)의 지도자와의 결속)을 강조한다. 이들 개념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전부터 존재하며 최근 러시아·중국·미국의 외교 담론에서 부각되고 있다. 이는 주권이 강대국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국제질서의 기반에 중대한 함의를 던진다.

주권개념의 발전

냉전 이후 세계화가 국가 주권을 약화시키는 듯 보였고, 특히 EU와 UN을 중심으로 한 초국가적 규범과 인도적 개입 논의는 ‘탈(脫)베스트팔렌 시대’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NGO와 민주주의 확산, 리비아 사태 이후의 개입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며 비간섭 원칙을 재강조했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대중적 반발과 포퓰리즘의 부상 속에 국경 통제 강화, 보호무역주의, 국제적 약속 철회가 확산되었다. 이처럼 권위주의 국가들의 저항과 서구 포퓰리즘의 결합은 베스트팔렌식 주권의 새로운 지지 기반을 형성하며, 주권의 ‘귀환’이라는 진단을 뒷받침했지만, 이는 주권 개념의 복잡성과 다른 형태의 부활 가능성을 간과한 단순화된 해석이었다.

Historicizing Sovereignty

  • 베스트팔렌 주권은 흔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기점으로 중세의 복잡한 봉건적 질서에서 근대적 국가체제로 전환한 분수령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정착한 개념이며 불간섭 원칙도 18세기 후반에야 명확히 드러났다. 이후 18~19세기에는 국민주권과 민족주권이 부상해 독립전쟁과 탈식민 과정을 정당화하며 베스트팔렌 모델과 공존·상호작용해왔다.
  • 그러나 학계는 주로 1648년 이전의 주권 개념을 구시대적 전단계나 실패한 경쟁자로 간주해 간과해왔고, 이로 인해 국제관계 연구에는 ‘주권=근대적 국가 형태’라는 편협한 인식이 자리 잡았다. 사실 일부 전근대적 주권 개념은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어 왔으며, 그 대표적 유형이 초법적 주권과 유기적 주권으로, 오늘날 주권의 부활을 논할 때 이들의 동반적 재등장을 고려해야 한다.

    Extralegal Sovereignty

  • 초법적 주권(Extralegal Sovereignty) 은 지도자가 공식적 규칙의 제약을 넘어설 권리를 의미하며, 기원은 1세기 로마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Poluplar consent 에 기반해서) 황제가 되면, 로마 권력의 신적 화신으로 간주되어 법 위에 존재했고, 울피아누스(Ulpian)가 “(세속분야에서는) 군주의 뜻은 곧 법이며, 군주는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정의한 바 있다. 중세에도 신, 교황, 황제, 국왕 등 여러 권위가 병존했지만, 법학자들은 여전히 주권을 제약 없는 통치 권력으로 이해했다.
  • 근대 초기 보댕(Jean Bodin) 역시 주권을 영토 내에서의 집중적·최고 권위로 보면서도 “법에 구속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유지했고, 이는 절대주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로크(John Locke), 칸트(Immanuel Kant) 등은 개인의 자연권과 사회계약론을 강조하며 주권에 제약을 두었지만, 홉스(Thomas Hobbes)는 오히려 무제한적 절대 주권자, 즉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상정했다. 이후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하며 법질서 바깥에서 행사되는 최고 권력을 주권의 본질로 규정했다.
    • -Popular Sovereignty는 좁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근대로는 나폴레옹부터 시작. Poluplar consent 에 기반해서) 당선되었지만 초법적 주권을 행사하는 지도자가 현대에서 등장하고 있음 (푸틴 등)

    Organic Sovereignty

  • 유기적 주권(Organic Sovereignty)은 국가를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보는 개념으로, 고대 그리스의 정치적 자연주의에서 비롯되어 로마 사상과 기독교 신학을 거쳐 발전했다. 플라톤은 국가를 영혼의 각 부분처럼 계급이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묘사했고, 바울은 교회를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신자들이 이루는 신비적 유기체로 설명했다. 존 오브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 역시 정치 공동체를 머리(왕), 손(관리·군인), 발(농민)로 구성된 몸에 비유하며 모든 구성원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강조했다.
    • e.g. “건국의 아버지”, “국가의 아버지” 가부장적 국가제
  • 계몽주의 시기에는 국가를 합리적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만든 ‘기계적 신체’로 비유했으나,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개인들의 의사를 넘어서는 ‘일반의지’를 사회의 공통된 초월적 의지로 정의하며 다시 유기적 전통을 소환했다. 18~19세기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와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문화·언어·종교·혈통을 국가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으며 “피와 흙(blood and soil)”의 유산을 강조했고,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은 국가를 유기적 전체로서 부분의 독립은 병리라고 보았다. 결국 유기적 주권은 베스트팔렌식 권리나 지도자의 초법적 권력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 전체의 힘과 독자적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의미했다.

    The Return of Sovereignty—But Which Kind?

  • 초법적 주권은 권력을 지도자의 고유한 자질에, 유기적 주권은 사회의 본질적 통일성에 두지만, 두 개념 모두 베스트팔렌식 주권이 설정한 내정 불간섭과 제약을 거부하며 강대국의 지배를 정당화할 여지를 남긴다. 따라서 최근 주권의 복귀 논의가 단순히 베스트팔렌 모델의 재등장이 아니라, 제약 없는 권력 행사와 문명적 우월성을 근거로 한 오래된 주권 개념의 부활일 수 있다

규범 회수

국제 규범 연구는 보통 새로운 규범이 어떻게 등장·확산·제도화되는지를 설명하면서 NGO나 중소국을 규범 기업가(norm entrepreneur)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주권 개념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강대국 역시 핵심적인 규범 기업가로 작동할 수 있다. 국가가 자국의 정책과 행위를 정당화하려면 지배적 주권 개념과의 정합성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국제사회와 자국민의 묵시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강대국은 완전히 새로운 규범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역사적 뿌리를 지닌 오래된 주권 개념을 되살리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규범 회수(norm retrieval)는 기존에 공유된 의미와 상징 자원을 활용하기 때문에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규범 회수의 증거는 담론과 행위 속에서 드러난다. 국가들이 주권을 언급할 때 어떤 의미 (영토적 독립과 불간섭을 중시하는 베스트팔렌식, 지도자의 절대 권력을 강조하는 초법적, 사회의 문화적 통일성을 중시하는 유기적) 을 부여하는지를 분석하면 된다. 또한 이들이 국제 질서의 정당한 구조를 설명할 때 주권이라는 용어를 직접 쓰지 않더라도, 사실상 초법적·유기적 원리를 동원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담론의 변화와 실제 행위의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다면, 이는 강대국들이 특정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주권 개념을 의도적으로 소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1차적 증거가 된다.

  • 지금까지의 국제기구는 주권국가의 합의, 그리고 그 주권국가는 popular consent에 기반했을 것
  • 하지만 현재는 organic sovereignty에 기반한 국가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 국제기구는 해체될 수 있음

담론 분석

러시아, 중국, 미국의 주권 담론을 비교하면 세 나라 모두가 전통적 베스트팔렌식 주권(territorial integrity, nonintervention)에 언급을 두면서도, 동시에 초법적(extralegal)·유기적(organic) 이해를 되살려 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공동체와의 통합을 말했지만, 2004년 재선 이후 점차 주권을 러시아의 독자적 가치·정체성·문명적 사명과 결합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와 전통적 가치, 민족적 영성을 결합해 러시아를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 묘사했고, 이를 위해 강력한 대통령 권한이라는 초법적 요소를 정당화했다. 크림반도 병합 같은 군사행동도 이러한 유기적·초법적 주권의 표현으로 제시되었다.

중국의 시진핑“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China Dream)”을 내세우며 서구식 주권 담론과 동시에 전통적 제국질서(tianxia)와 유교적 조화를 소환했다. 그는 주변국을 ‘주변(periphery)’으로 호명하며 중국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은연중에 정당화하고, 일대일로(BRI)를 통해 과거 조공체제의 현대적 변용을 시도했다. 동시에 시진핑은 당과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초법적 권위를 행사하고, “피와 문화로 연결된” 중국인 디아스포라까지 동원하는 유기적·문명적 주권 개념을 전면화했다.

미국의 트럼프 유엔 연설에서 “sovereignty”를 반복해 언급하며 이를 단순히 독립과 불간섭이 아니라 “강한 가족, 신앙, 희생정신”으로 뭉친 공동체의 생명력으로 묘사했다. 이는 유기적 주권의 요소였다. 그는 또한 국경 장벽과 반이민 정책을 사회적·도덕적 순수성 유지라는 논리로 정당화하며 주권을 혈통과 문화적 동일성과 연결시켰다. 더 나아가 “대통령으로서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 속에서 초법적 주권의 성향도 드러냈다.

결론

이들은 베스트팔렌적 주권(영토 보전, 불간섭)을 표방하면서도, 지도자의 절대적 권능이나 문명·민족적 결속을 주권의 근거로 삼아 자국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자율적 독립국가 간의 평등이라는 주권의 ‘제약적 기능’을 약화시키며, 오히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할 위험이 크다. 특히 국제정치학에서 주권을 1648년 이후의 산물로만 보는 기존 연구는 이러한 ‘규범 회수(norm retrieval)’ 현상을 간과해 왔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수사적 변화를 넘어 국제질서의 방향을 가늠하는 신호일 수 있다. 지도자들이 옛 주권 개념을 불러낸 것은 기존 세계질서에 대한 불만과 정당성 비용을 줄이려는 전략적 이유와 맞닿아 있다. 만약 이 담론이 확산된다면 국제관계는 협력보다 경쟁, 자제보다 패권 추구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향후 연구는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러한 규범 회수가 일어나는지,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는지, 그리고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제도적·규범적 장치는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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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된 규범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인가 ‘권력 투사(power projection)’인가?
  • Constructivist 이론에 따르면 국제 규범은 국가들이 일정한 shared understanding(공유된 이해) 위에서 성립해야 함
  • 그러나 최근 러시아, 중국, 미국이 사용하는 담론을 보면, 국제사회 전체의 합의라기보다는 자국 내 정치적 정당화나 국민 동원을 위한 수사에 가까움. 그렇다면 이것을 정말로 norm retrieval(규범 회수)로 볼 수 있을까?
  • 혹은 이는 국제 규범의 재정립이 아니라, 사실상 강대국이 자신의 영향력과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hegemony-building(패권 구축)의 새로운 언어라고 이해해야 하는 편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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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Westphalian sovereignty(베스트팔렌식 주권), extralegal sovereignty(초법적 주권), organic sovereignty(유기적 주권)을 단순히 병렬적인 주권 개념들로 다루고 있음.

베스트팔렌식 주권이 국제사회의 기본 규칙(예: 영토 보전, 내정 불간섭)을 정해 국제 질서에 최소한의 제약을 부여하는 틀이었다면 초법적·유기적 주권은 그 규칙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해체하는 언어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만약 sovereignty 자체가 국제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메타 규범(meta-norm) 이라면, 이 메타규범이 교체되거나 흔들린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주권 개념이 등장했다는 차원을 넘어, 국제 질서 자체가 성립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뜻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