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학에서 주권(sovereignty) 은 흔히 변하지 않는 고정된 틀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성격을 가진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주권을 영토적 권위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authority within territory) 로 설명해왔지만, 실제로는 합법성(legitimacy) 의 기준이 변하면서 주권의 의미도 함께 달라졌다.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 같은 체제 위기(systemic crisis) 가 닥치면, 새로운 지배적 연합(dominant coalition) 이 이전 질서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보고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세우면서 주권의 해석이 바뀌어왔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긴장은 국가 주권(state sovereignty) 과 민족 주권(national sovereignty) 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국가 주권은 영토 중심으로, 이미 성립한 국가의 국경과 권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반대로 민족 주권은 사람·집단 중심으로, 특정 민족이 스스로를 다스릴 권리(민족 자결권, national self-determination)를 강조한다. 따라서 국제 사회가 어느 쪽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기존 국가가 지켜지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민족 국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 주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라는 두 상반된 원리 사이에서 시대마다 달리 정의되고 제도화되는 규범적 구성물이다
변수로서의 주권
국제관계 이론에서 주권은 전통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수로 간주되어 왔다. 현실주의자들은 무정부(anarchy) 개념의 출발점으로서 주권을 절대적 전제로 보고, 제도주의적 접근도 주권을 역사적으로 고정된 제도적 구조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크라스너(Krasner)는 국가 체제가 남긴 강력한 제도적 유산으로서 주권을 설명하며, 톰슨(Thomson)과 함께 주권이 단기간 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불(Bull) 역시 실질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국가라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주권의 합법성 기준과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정의·변화되었는지에 대한 탐구를 소홀히 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사실 주권은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로서 시대적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외교적 승인(diplomatic recognition)과 합법성은 국제체제의 기본 원리이며, 이는 법적이라기보다 정치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국가라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되지만, 민족주의 집단이 무력을 통해 같은 권리를 주장하면 테러리스트로 규정되는 차이가 생긴다. 기든스(Giddens)가 강조하듯, 국가 주권은 미리 주어진 절대 권력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제도적 성격을 가진다. 결국 주권을 고정된 법적 개념으로만 볼 경우 국제질서 변화의 동학을 설명하는 데 제약이 크며, 이를 변하는 변수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주권과 민족주권
국제관계에서 주권(sovereignty) 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하나는 국가 주권(state sovereignty) 으로, 영토와 제도적 권위에 기반한다. 다른 하나는 민족 주권(national sovereignty) 으로,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정체성과 감정(community of sentiment)에 기반한다. 국가 주권은 법적 경계와 역사적 소유권을 바탕으로 정당성을 주장하며 안정적 제도를 가진 국가에 힘을 실어준다. 반면 민족 주권은 국민의 연대감과 자결권을 강조하며, 국경보다 집단 정체성을 우선시한다.
이 두 원리는 국제 질서 속에서 늘 긴장을 만들어 왔다. 국가 주권을 중시할 때는 기존 국경과 안정된 제도를 존중하며 국제사회의 안정성을 확보하지만, 민족 주권이 강조되면 새로운 민족국가의 등장과 국경 재편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민족적 주장은 종종 소수집단의 분리 요구나 국경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체제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반대로 국경만을 고수하는 국가는 억압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언제나 두 원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역사적으로는 대규모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느 원리를 우선할지가 결정되었다. 합법성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승자 연합(dominant coalition)이 합의한 원리에 의해 정의되었다. 이 때문에 근대 국제질서에서는 주권 정당화의 기준이 국가 중심에서 민족 중심으로, 혹은 그 반대로 주기적으로 이동해 왔다. 결국 오늘날의 국민국가(nation-state) 는 국가적 정당성과 민족적 정당성이 교차하며 형성된 산물로, 이 두 원리의 모순은 앞으로도 국제 질서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 국가(state) 란 명확한 영토와 제도적 권위를 바탕으로 합법적 통치권을 행사하는 정치 공동체이다.
- 민족(nation) 이란 공통의 정체성·역사·문화적 연대감을 기반으로 정치적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집단이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기존 베스트팔렌 주권(Westphalian sovereignty) 질서에 큰 도전을 제기했다. 혁명 프랑스는 민족주의(nationalism) 와 공화주의, 자유의 이념을 무력으로 유럽 전역에 확산시켰고, 이는 유럽 군주제의 정통성을 위협했다.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유럽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을 겪었고, 승전국들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설계해야 했다.
-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각 국가는 자국 영토 안에서 절대적·배타적 권위를 가진다고 합의함. 즉, 외부 간섭 없이 내부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 프랑스 혁명(1789) 이후 나타난 새로운 정치이념과 나폴레옹의 팽창 전쟁은, 기존처럼 “왕과 영토의 소유권”으로 주권을 인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족과 시민이 주권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퍼뜨렸다. 이는 기존 왕조 중심의 주권 질서와 정면 충돌했음
- 민족주의(nationalism): ‘주권은 군주가 아니라 민족(people, nation)의 것’이라는 사상. 프랑스 혁명은 “나는 루이 16세의 신민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다”라는 인식을 확산시켰음.
- 공화주의(republicanism): 왕이나 귀족이 아닌 시민의 대표가 통치해야 한다는 원리. 프랑스는 혁명으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웠고, 이를 주변국에도 전파하려 함
- 자유(liberty): 봉건적 신분 질서와 전제정치를 거부하고, 시민 개개인이 자유롭게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혁명의 핵심 이념.
- 프랑스는 외교·사상적 설득이 아니라 전쟁과 정복을 통해 이 사상을 유럽 전역으로 퍼뜨렸다. 나폴레옹은 점령지에서 나폴레옹 법전(Napoleonic Code) 을 도입하고, 봉건제 폐지와 근대적 제도(법·행정)를 강제로 확산시켰다.
1814~1815년 빈 체제(Congress of Vienna)는 승전 연합(영국·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의 합의에 따라 수립되었고, 그 정당화 원리는 합법성과 균형(balance of power) 이었다. 메테르니히(Metternich)는 조약의 신성함과 군주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민족 자결보다 기존 왕조의 권리를 우선시했다. 실제로 폴란드, 벨기에, 노르웨이 등 민족적 요구는 무시되었고, 국경은 군주 간의 협상과 보상 거래로 결정되었다. 이는 “국가는 국민과 분리된 독립적 실체”라는 원리를 반영했고, 성립된 국제 질서는 보수적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체제는 이후 수십 년간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지만, 동시에 유럽 각지에서 끊임없는 민족주의적 반란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강은 헬레니즘 봉기나 벨기에 독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민족 운동을 진압했다. 결국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국제 질서는 국가 주권을 민족 주권보다 우위에 둔 보수적 안정체제였으며, 이는 국가 간 전쟁의 억제와 내부 민족주의 갈등의 억압이라는 이중적 특징을 보였다.
- 그리스 독립(헬레니즘 봉기, 1820년대)은 유럽 열강이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이유로 지지했고,
-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남부(벨기에)와 북부(네덜란드)를 억지로 합쳐놓았는데, 언어·종교·경제적 차이 때문에 곧 불만이 폭발함. 따라서 벨기에 독립(1830)은 프랑스의 팽창을 막고, 영국이 원하는 해협(도버 해협) 안전을 확보하며, 유럽 열강 간 새로운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는 나폴레옹 전쟁 후와 비슷하게 제국의 붕괴와 국경 재편이라는 조건을 공유했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빈 회의가 국가 주권(state sovereignty) 과 합법성을 바탕으로 기존 왕조와 영토를 복원했다면, 베르사유 조약은 새로운 국가들을 다수 출현시켰고 민족 자결(self-determination) 을 주요 원리로 삼았다. 이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14개조 원칙(Fourteen Points) 과 추가 원칙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전쟁의 원인을 권위주의와 국가·민족 불일치에서 찾고, 전후 질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민주적 정부와 민족적 경계의 일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러시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며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새로운 민족국가가 탄생했다. 프랑스·영국 등 승전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유지했으나,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민족의 권리를 존중해야 했다. 독일 식민지와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직접 병합되지 않고,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위임통치(mandate system) 로 관리되었다. 이처럼 베르사유 체제는 민족 주권(national sovereignty) 의 승리로 상징되며, 국가보다 민족을 정당화 원리로 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전과 달리 전쟁 원인이 민족주의와 파시즘(fascism)의 팽창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승전국 연합은 민족 자결(self-determination)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이 국경 확장이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국제 평화를 위협한다고 보았다. 대신 민족의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 of peoples) 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정부에 참여할 권리로 이해되었고, 특정 민족 집단의 독립이나 확장 요구와는 분리되었다. 이를 제도화한 것이 유엔 헌장(UN Charter)(공개외교+) 으로, 국경 불가침과 내정 불간섭, 개인의 평등적 대표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전후 유럽에서는 민족적 경계보다 국가 주권과 국경 안정성이 우선시되었고, 독일 민족은 두 국가로 분단되며, 소련 내 다민족 문제 역시 그대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전후 합의는 유럽뿐 아니라 탈식민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유엔과 옛 식민 열강은 새 국가들의 경계를 민족적 기준이 아니라 기존 식민지 경계에 맞추어 설정했고, 이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뚜렷했다. 이렇게 국경을 고정하는 방식은 민족자결보다 국가의 통치 능력(good government) 과 제도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후 국제 질서는 민족주의보다 기존 국경을 존중하는 원칙을 우선하며, 미국과 소련 등 초강대국도 분리주의 운동을 거의 지지하지 않았다. 이는 냉전 하의 국제 관계를 안정시키는 “게임의 규칙”으로 작동하면서, 주권의 합법성 기준이 민족이 아닌 국가로 다시 기울게 된 것을 보여준다.
냉전 시기에는 국가 주권과 국경 불가침 원칙이 절대적으로 존중되었고, 이는 내전·소수민족 억압·심지어 집단학살(genocide) 도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합법성담론은 크게 변하며, 내정 불간섭보다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 확산 같은 가치가 전면에 등장했다. 동유럽의 국경 변화, 독일 통일,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해체는 과거라면 안정을 해칠 위협으로 보였겠지만, 이제는 국제사회가 긍정적으로 수용하거나 묵인했다. 이는 민족 주권과 자결 요구가 다시 국제 질서 속에서 힘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항상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국제사회는 분열이 아니라 다수결 원칙(majority rule)을 지지하며 통합된 국가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는 냉전 시기부터 누적된 국제 담론이 고착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라크는 쿠르드족 등 활발한 분리주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과 중동 안정성 때문에 국가 통합 유지가 국제적으로 우선시되었다. 즉 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국가 해체와 국경 변화에 과거보다 유연해졌지만, 전략적 고려와 지역 안보 이해에 따라 예외를 적용했다. 전반적으로는 냉전 이후의 국제 질서가 주권을 “국가 절대성”이 아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구성물로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민족적 원리에 무게가 실릴 때는 국경 변경이 정당화되어 국가 간 전쟁 위험이 커지고, 법적·제도적 원리에 무게가 실릴 때는 갈등이 주로 국가 내부 폭력으로 나타난다. 보스니아, 이라크 사례에서 보듯 국제사회의 개입 여부도 이러한 이해에 따라 달라졌다.
따라서 주권을 불변의 전제로 두는 기존 국제관계 이론은 한계가 있으며, 주권 자체를 역사적·사회적으로 변화하는 변수로 분석해야 국제 질서의 안정과 갈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리아, 리비아, 남수단 같은 경우를 보면, 안에서 국민들이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이나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거나, 내전과 갈등으로 사실상 나라가 분열된 상태임.
즉, 국민적 기반이 거의 없는 나라인 셈.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여전히 이 나라들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유엔 의석도 주고, 외교적 권리도 보장하고 있음.
→ 국민 없는 주권, 기능 없는 주권을 가진 국가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이유를 이 논문은 설명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경우, 국제사회는 국가주권을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민족주권을 더 강조하는 듯한 이중 잣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