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학자들은 현실주의를 ‘평화의 과학(science of peace)’으로 재해석하려 했다. 로버트 길핀(Gilpin, 1981: 226–227)은 현실주의가 경험적 법칙에 기반해 국제정치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겐소(Hans Morgenthau) 역시 현실주의가 궁극적으로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투키디데스와 마키아벨리는 국제정치의 장을 본질적으로 도덕과 충돌하는 힘으로 이해했다. 스티븐 포드(Steven Forde)는 “고전적 저자들의 눈에 현실주의는 ‘도덕적 충동을 절제해야 할 대상’이지 결코 ‘평화를 위한 기술’이 아니었다”(Forde, 1992: 156–158)고 분석한다.
현대 국제정치학은 흔히 마키아벨리를 ‘현실주의의 시조’로 소환한다. 하지만 이는 그의 사상을 시대와 맥락에서 분리한 해석이다. 잭슨과 무어(Jackson & Moore, 2016)는 학자들이 마키아벨리를 “현실정치의 테마파크(theme park of Realpolitik)”로 축소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의 읽지 않았으며, 리비우스(Livy)와 같은 역사서, 장군과 군주의 행적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는 보편적 철학 원리를 제시하기보다 “구체적 상황에서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실무적 대응”(Machiavelli, 1513 [1961])에 몰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현실주의의 아버지’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사고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 점에서 찰스 틸리(Charles Tilly, 1985: 171)의 분석은 유용하다. 그는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전쟁, 국가형성, 보호, 징세라는 네 가지 과정이 얽혀 있다고 보았고, “정부는 폭력을 조직하고, 가능하다면 독점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통찰과 이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틸리의 강조처럼, 마키아벨리를 맥락 없이 현실주의의 기원으로 수용할 때, 우리는 그가 살던 르네상스 이탈리아라는 구체적 공간과 시간, 즉 정치적 불안정과 제국적 야망이라는 현실을 간과하게 된다.
한편 《군주론》(Il Principe)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정(Principati)의 안정성을 분석했지만,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에서는 분명히 공화국을 더 우월한 정치 형태로 제시했다. 그는 세습 군주정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반면, 공화국은 끊임없이 유능한 인물을 배출하며 더 오래 존속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 명의 훌륭한 군주 뒤에 무능한 군주가 오면 국가가 망한다. 그러나 공화국에서는 유능한 인물이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유가 유지된다”(Machiavelli, Discorsi, I.2). 로마 공화국은 귀족과 평민의 갈등 속에서 제도를 다듬고, 외부 정복 전쟁을 통해 덕성(virtù)을 강화함으로써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동시에 확장의 역설도 인식했다. 로마의 팽창은 자유와 덕성의 원천이었으나, 모든 경쟁자를 굴복시키고 나면 덕성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고 결국 타락에 빠졌다. “제국의 위대함(grandezza)은 곧 그 몰락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Machiavelli, Discorsi, I.6). 이는 곧 공화국적 자유(libertas)와 제국적 위대함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통찰을 드러낸다. 마키아벨리에게 제국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였지만, 동시에 덕성과 자유를 파괴하는 불가피한 운명이기도 했다.
20세기 현실주의자들은 이러한 고전적 비극성을 완화하려 했다. 모겐소(1978 [1948])는 국가이익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면 협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네오리얼리스트들은 제도와 국제레짐을 통해 국가 간 협력이 제도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Keohane, 1986a; Gilpin, 1986). 게임이론을 활용한 학자들은 “미래의 그림자”를 길게 하고, 상호성(reciprocity)과 규범을 강화하면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협력이 촉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한계를 안고 있다. 국가들이 절대적 이익보다 상대적 이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특히 군사·안보 영역에서 협력은 취약하다. 실제로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동맹 파열, 마키아벨리가 지적한 제국의 확장 충동은, 국가 간 협력이 언제든 강대국의 이익 계산에 의해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주의가 ‘평화의 과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결국 공통선(common good)을 가정해야 하는데, 마키아벨리와 투키디데스에게 그러한 공통선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종합하면, 현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도덕과 결합하기 어려우며, 협력은 언제든 취약한 균형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투키디데스는 현실주의적 충동을 절제해야 한다고 보았고, 마키아벨리는 제국의 위대함을 찬미하면서도 그 속에 내재한 몰락의 운명을 직시했다. 20세기 현실주의자들은 이 비극성을 희석해 현실주의를 평화의 도구로 재해석하려 했지만, 인간 본성의 야망과 두려움, 그리고 국가 간 권력 추구의 논리가 이를 끊임없이 저해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소비하기보다는, 그를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국제정치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사상가로 읽는 것이 필요하다.
Source
- Pangle, Thomas & Peter Ahrensdorf, Justice Among Nations: On the Moral Basis of Power and Peace (Kansas City: University Press of Kansas, 1999), Ch. 5 (pp. 125-144).
- Boucher, David. Political Theories of International Relat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Ch. 5 (pp. 90-113) & Ch. 6 (pp. 114-144).
- Regent, Nikola, “Machiavelli: Empire, Virtu and the Final Downfall” i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Vol.XXXII, No. 5 (2011), pp. 752-772.
- Michael Jackson & Thomas Moore, “Machiavelli’s walls: the Legacy of realism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International Politics 53: 4, 447-65
- Forde, Forde, “International Realism and the Science of Politics: Thucydides, Machiavelli, and Neorealism” ISQ, vol. 39, no. 2 (1995), pp. 141-160.
Note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작성했을 때 다른 통치체제를 고려한 것은 아님. 기억할 것은 군주국이든 일반적 국가가 되었든 군주론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하고자 했던 점은 ‘국가 이성 (reason of state)’ 은 생존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임. 군주국이 아닌 곳에서도 마키아벨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국가 이성 관점에서는 국가 지속 가능성에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
로마사논고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정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인지 가려내는 것이 논쟁거리기도 했음. 그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쓰여진 동시 저작임에도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서 읽어보는 시도가 중요함. (로마 역사가 상당히 다이나믹한데,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기에 아주 좋은 원전이었음)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시기에 재직하다가 군주정시기에 추방 당했던 배경이 있음.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영역에서 확인하고 싶고, 이를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사람인 것 같음. 군주론의 외형상 특징은 매뉴얼(가이드북) 느낌이 없지않다. 하지만 장르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의 스타일은 상당히 많았음. 따라서 정치권에 보내는 시그널(?)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음.
마키아벨리 개인의 입장은 공화국 선호가 분명함. 국가 이성의 관점에서는 공화정이 (표면적으로는) 더 지속가능하다고 판단했음. 공화정은 평민과 귀족의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에 높게 점수를 주었고, 군주나 민주정은 다수의 지배로 넘어가면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음.
- 공화정은 불가피하게 ‘팽창’할 수밖에 없음. 공화정이 처한 운명 가운데 하나가 팽창(제국 욕구)이고 필연에 가깝다면, 이 것이 공화국의 전제 조건인지, 아니면 공화국은 팽창을 위한 수단인지? 마키아벨리가 우선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팽창을 위해 공화정이 유용한 정체라고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화정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팽창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인지? (두가지 요소가 다 보이긴 함).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
Virtue의 가장 고전적인 뜻은 인간의 탁월성, 훌륭함을 의미하는데, 플라톤식이면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고도 볼 수 있음. (그냥 그 자체로 칭송받을만한 것) 하지만 마키아벨리아의 덕성은 기본적으로는 Christian virtue로, 일반적으로 관대함, 사랑, 자비를 의미하고 고대 그리스의 인간적 탁월성과는 조금 다름. 그는 더 나아가 “군주”의 덕성을 말하고자 했음. 그것은 목적을 충족시키는 자질로서의 덕성이다. 결국 국가 이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 사실 고전적 Virtue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데, 마키아벨리의 덕성은 군주에게 필요한 자질을 말하는 것이고 목적을 위한 역량을 말하는 것임.
- 군주론에서의 그 덕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입증되는가? 결국 피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 (군주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 등)
- 로마사논고의 공화정에서는 덕성 언급이 덜함. 공화정에서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제도임. 귀족, 평민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어떻게 창안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종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등이 주안점. 귀족의 지배욕구를 더욱 허용하게 되면 과두정(oligarchy)가 되는 것. 다수의 평민의 기본적 속성은 자신들이 ‘다수’의 이점 빼놓고는 내세울 것이 없게됨. 지배욕구를 표출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지배 받기는 싫다’고 생각함. 그러한 욕규의 충돌이 존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