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투키디데스와 “민주적 제국”

Park, Sungwoo, “Thucydides on the Fate of Democratic Empire,”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Area Studies, Vol. 15, no. 1 (2008): 93-109.
Sep 24, 2025
투키디데스와 “민주적 제국”

이 논문은 아테네 제국의 몰락을 민주주의의 집착 때문이라고 단선적으로 설명하지만, 오히려 제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점차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왔다는 순환적 관계를 간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더 나아가, 투키디데스가 진정으로 강조한 것이 민주적 원칙의 고수였는지, 아니면 인간 본성에 내재한 공포·명예·이익의 충돌이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후자라면, 이 논문은 투키디데스를 현대 민주주의 논쟁의 틀 안에 억지로 끌어들인 해석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민주적 제국”은 본질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두 원리를 내포한다.

민주주의가 국내적으로는 자유와 참여를 강조하는 반면 제국은 대외적으로 억압과 침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근대와 냉전을 거쳐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제국적 행태를 정당화했던 것처럼, 아테네 역시 민주주의와 제국 사이의 모순을 안고 있었다. 플라톤은 외교정책이 개인 영혼 형성과 국가 성격에 직결된다고 보았고,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 제국의 몰락을 데모스의 과도한 욕망과 영혼의 타락으로 설명했다. 전통적 해석은 페리클레스 이후 지도자들이 통제력을 잃어 제국이 쇠퇴했다고 보지만, 본문은 아테네 데모스가 의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우선시했다고 주장한다. 즉, 미틸레네 논쟁이나 시칠리아 원정 등 주요 국면에서 데모스는 지도자의 덕목보다 대중 앞에서의 민주적 충성심을 기준으로 판단했고, 이는 제국의 공익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는 선택이었다. 따라서 아테네 데모스는 무책임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비합리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민주적 제국의 내적 모순은 결국 전쟁 속에서 폭발해 아테네를 파멸로 이끌었다.

이 부분은 투키디데스가 설명한 아테네 민주적 제국의 기원을 다루는데, 핵심은 자유와 제국의 억지 결합이다. 본래 그리스인들에게 자유는 내부적으로 참주로부터, 외부적으로는 페르시아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고, 아테네는 이를 민주주의의 수호와 직결시켰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그리스 전체 자유의 보호자를 자임하며 헤게몬에서 제국으로 변모했고, 동맹을 이탈하려는 도시들까지 무력으로 제압하며 ‘참주 도시’라는 비난을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를 지키는 민주적 제국처럼 보였으나, 제국이 본질적으로 참주적 지배를 뜻하고 민주주의가 그것의 부정 개념이었던 만큼 두 원리는 본질적으로 부조화적이었다. 외부인들은 이를 곧바로 모순으로 인식했지만, 아테네인들은 페리클레스의 웅변에 매혹되어 오랫동안 제국과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고, 이는 결국 아테네 제국의 자기모순을 심화시켰다.

아테네 사절단은 제국이 두려움·명예·이익이라는 보편적 인간 동기와 불가피한 강제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 주장하면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의 공로, 해적과 혼란을 정리한 질서, 피지배자에게 부여된 자유 등을 근거로 아테네 지배가 정당하고 이롭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제국은 본질적으로 참주적임을 숨길 수 없었고,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의 덕목을 과장해 아테네인들에게 제국과 민주주의가 조화된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도시의 자유, 나아가 제국 유지가 불가분하다고 설득하면서, 제국을 포기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렇게 아테네인들은 제국을 민주주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틸레네 반란 같은 사건을 계기로 점차 이 매혹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미틸레네 반란을 둘러싼 논쟁은 아테네 데모스가 페리클레스의 매혹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제국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택했음을 보여준다. 역병 직후 반란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남성 몰살·여성·아이 노예화를 결정했으나, 회한 속에 이를 재고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클레온은 제국은 본질적으로 참주적이라며 민주주의 자체가 제국 운영을 망친다고 비판했지만, 이는 데모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반대로 디오도토스는 민주적 충성심을 내세우며 무차별 처형은 아테네의 이익에도 반한다 주장했고, 대부분이 무죄라는 점을 강조해 데모스의 지지를 얻었다. 최종적으로 데모스는 제국의 통합보다 민주적 원칙을 우선시했고, 이는 민주적 제국의 내적 모순 속에서도 아테네인들이 의식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택했음을 드러냈다.

시칠리아 원정은 흔히 아테네 제국 몰락의 전환점으로 여겨지지만, 본질적 문제는 원정 자체보다 그 운영 방식에 있었다. 아테네 데모스는 가장 유능한 장군 알키비아데스를 불신과 참주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환하고, 소극적이고 경건한 니키아스를 대신 임명했으며, 이는 결국 재앙적 패배로 이어졌다. 투키디데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야망이 아니라 데모스의 잘못된 경건과 민주주의 충성심이 결정적이었다고 시사한다. 실제로 아테네는 승리에 근접했지만, 알키비아데스 추방과 니키아스의 우유부단함이 군 전체를 파멸시켰다. 따라서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는 제국의 과도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제국의 실리보다 민주주의 원칙을 우선시한 아테네 데모스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민주적 제국이 내재한 자기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투키디데스의 결론은 민주적 제국이 근본적으로 자기모순적이므로 결국은 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자들에게는 제국을 유지하려면 민주적 원칙을 희생해야 하고, 그렇다면 더 이상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반대로 제국을 운영하는 엘리트들에게는 페리클레스처럼 민주적 덕목을 수사적으로 미화하고 제국을 민주적 삶과 연결 지어 정당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만약 이를 소홀히 하고 현실주의적 논리만 앞세운다면, 제국의 몰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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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아테네 제국의 몰락을 민주주의의 집착 때문이라고 단선적으로 설명하지만, 오히려 제국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점차 변형되고 왜곡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불러왔다는 순환적 관계를 간과한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투키디데스가 진정으로 강조한 것이 민주적 원칙의 고수였는지, 아니면 인간 본성에 내재한 공포·명예·이익의 충돌이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후자라면, 이 논문은 투키디데스를 현대 민주주의 논쟁의 틀 안에 억지로 끌어들인 해석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