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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와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국제기구 내 균형

Haas, Ernst B. 1956. “Regionalism, Functionalism, and Universal International Organization.” World Politics 8(2):238-263.
Sep 26, 2025
기능주의와 지역주의가 만들어낸  국제기구 내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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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회의 (San Francisco Conference, 1945.4~6)

배경

  • 전쟁을 끝낸 연합국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실패를 교훈 삼아, 더 강력하고 현실적인 집단안보 기구를 만들고자 했음.
  • 국제연맹의 문제: 집행력 부족, 미국 불참, 만장일치 원칙 → 무력한 기구.
  • 유엔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대국 협조 체제를 제도화.

유엔 헌장(UN Charter)은 원래 5대국(Big Five) 협조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 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 체제를 설계했고, 경제발전이나 탈식민은 평화를 위한 부수적 수단으로 여겨졌다. 지역기구(regional organizations)들은 안보리(Security Council)의 지휘 아래 두는 것이 이상이었다. 그러나 1947년 이후 현실은 달랐다. NATO, SEATO, Commonwealth, 아시아·아프리카 블록(Afro-Asian bloc) 등 지역주의(regionalism)가 급속히 성장했고, 이들 체제가 유엔보다 더 강한 응집력과 집행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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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안보(Collective Security)의 개념
  • 정의: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은 모든 국가에 대한 공격”이라는 원칙에 따라, 모든 회원국이 집단적으로 침략을 억제·응징하는 제도적 장치.
  • 핵심 아이디어: 보편성(universality) + 자동성(automaticity).
    • 보편성: 모든 회원국이 침략자와 피해자를 불문하고 집단행동에 참여.
    • 자동성: 누가 가해자인지 규정되면, 대응은 ‘자동적·공동적’으로 발동. (적의 개념: 특정 국가가 아니라, 공격을 먼저 하는 “행위” 자체가 적.)
  • 예: 유엔(UN) 헌장 제7장(Chapter VII) – 안보리가 평화 위협·침략을 규정하면 회원국이 군사·비군사적 조치에 참여.

냉전(Cold War) 시기 집단안보는 허용적 집행(permissive enforcement) 과 균형(balancing) 이라는 새로운 원칙으로 움직였다. 유엔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특정 국가나 지역 동맹에 권한을 위임하고(예: 한국전쟁의 유엔군), 중립 블록은 타협안을 제시하며 군사 개입을 제동했다. 이로써 유엔은 공동체적 양심의 장이 아니라, 지역 블록들이 거래와 견제를 벌이는 협상장이 되었다.

또한 경제·사회·탈식민 문제는 단순한 평화 수단이 아니라 독자적 목표로 부상하여 안보 이슈와 교환의 대상이 되었다. 예컨대 어떤 국가는 안보 결의안 지지를 대가로 식민 문제나 경제개발 이슈에서 양보를 요구했다. 하스(Ernst B. Haas)는 유엔의 실제 작동이 법적 정밀성보다 정치적 균형과 거래에 의해 규정되며, 이는 고전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과 닮았다고 본다. 결국 냉전기의 평화는 헌장의 이상이 아니라 지역주의와 기능주의(functionalism)가 얽힌 현실적 타협 속에서 유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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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는 국가들이 전통적인 안보·군사 분야가 아니라, 경제·사회·기술 같은 ‘기능적’ 문제 영역에서 협력을 시작하면, 점차 신뢰가 쌓이고 협력이 확대되어 전쟁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봄. 즉, “안보 같은 큰 정치(security, high politics) 문제에서 바로 협력하는 건 힘들지만, 보건·통신·교통·무역·금융 같은 실질적이고 비정치적인 분야(low politics)에서 먼저 협력하면, 협력의 습관(habit of cooperation)이 생겨서 국제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

하스는 먼저 소련 체제를 분석한다. 동유럽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이데올로기·제도·정책의 높은 일치성 덕분에 가장 견고하며, 긴장이 생기면 양보와 숙청으로 다시 통합된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포로 협상에서 중국은 인도의 타협안을 모스크바보다 먼저 수용할 태세를 보였고, 제네바 회담에서도 라오스·캄보디아 문제에서 몰로토프가 저우언라이보다 유연했다. 경제 원조와 극동 안보 문제도 갈등 요인이었다. 따라서 소련-중국 간에도 일정한 조정이 필요했다.

서방 진영은 NATO, SEATO/ANZUS, OAS로 구성되지만 내부 균열이 심했다. NATO는 유럽 방위를 위해 권한을 중앙 기구에 위임하며 위기를 관리했고, 핵정보 공유 협정 등 제도화를 이뤘다. 그러나 식민 문제에서 유럽은 식민지 유지, 미국은 아시아·아프리카와의 관계 때문에 양가적 태도를 보여 조정이 필요했다.

SEATO와 ANZUS는 위협 인식이 엇갈렸다. 미국은 중국, 호주·뉴질랜드는 일본, 태국·필리핀은 인도차이나에 집중했고, 영국·프랑스는 말라야와 인도차이나, 파키스탄은 인도를 중시했다. 경제 개발과 식민 해방 요구에서도 합의가 부족했다. OAS에서는 미국이 안보를 우선시한 반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산업화와 경제개발, 원자재 협정, 식민지 철수를 요구했다. 결국 카라카스·리오 회의에서 미국은 상품 규제 회의를 허용했고, 남미는 반공 결의와 과테말라 개입을 묵인하는 식으로 상호 양보가 이루어졌다.

  • ANZUS (1951)은 미국·호주·뉴질랜드 3개국이 태평양 지역 방위를 위해 맺은 군사동맹이고,SEATO (1954)는 미국·영국·프랑스·호주·뉴질랜드·파키스탄·태국·필리핀 8개국이 동남아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결성했으나 결속력이 약했다.

아시아·아프리카 블록은 반둥회의로 상징되며, 고유한 조직은 없지만 경제 개발과 탈식민이라는 두 가지 공통 관심사로 묶였다. 이들은 유엔 차원의 대규모 투자와 기술 원조, 외국 자산 국유화 권리를 주장했으며, 동시에 수에즈·모로코·키프로스·팔레스타인·구 이탈리아 식민지 등 모든 잔존 식민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집단안보 문제에서는 합의가 부족했다. 일부 국가는 SEATO나 NATO에 참여했고, 다른 국가들은 네루나 하타가 강조한 중립주의에 따라 양 진영 모두에 휘말리지 않고 협상과 중재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려 했다.

  • 반둥회의(1955) 는 아시아·아프리카 29개 신생 독립국이 모여 식민주의 반대, 평화 공존, 비동맹 노선, 경제·문화 협력을 선언한 회의로, 이후 제3세계 연대와 비동맹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1954년 콜롬보 회의에서는 인도차이나 평화의 유엔 감독, 군축과 핵실험 중단, 중국의 유엔 가입, 탈식민 추진에 합의하면서도 “공산·반공·기타 외세의 간섭을 모두 거부한다”는 선언을 통해 내부 균형을 유지했다. 하스는 이처럼 각 지역체제는 내부 조정과 상호 양보를 통해 결속을 유지하지만, 완전한 단일성은 달성하지 못하며, 유엔 무대에서 다수결을 얻기 위해 추가 양보와 거래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 콜롬보 회의(1954) 는 인도·인도네시아·스리랑카·미얀마·파키스탄 5개국이 모여 냉전 대립 속에서 중립·평화 공존, 반식민, 핵실험 중단, 중국의 유엔 가입 등을 논의한 회의로, 1955년 반둥회의의 전 단계이자 비동맹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하스는 3장에서 경제 개발과 식민 해방 요구가 집단안보 논의와 어떻게 맞물려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개발도상국들은 세계은행(IBRD)의 보수적 대출에 불만을 품고, 유엔 주도의 국제금융공사(IFC)와 경제개발 특별기금(SUNFED) 창설을 요구하였다. 서방은 군비 지출과 자본 부족을 이유로 반대하였고, 소련은 미국 제국주의 도구라며 거부했으나, 결국 절충이 이루어졌다. 1953년 총회에서는 군축 성과를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단서와 함께 두 기구 연구를 승인하는 타협안이 통과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벨기에 대표 쉐이븐(Raymond Scheyven)이 각국 기여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탐색하는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겉으로는 서방이 개발도상국의 요구를 수용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양보를 통해 안보 표결에서 지지를 확보하려는 ‘거래(balancing)’의 일환이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비슷한 양상은 푸에르토리코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에 커먼웰스(Commonwealth) 지위를 부여하며 더 이상 유엔에 보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다수 국가는 여전히 자치 수준이 미흡하다고 보고, 유엔이 ‘자치/독립 평가 기준(factors)’을 만들어 검증할 권한이 있다고 요구하였다. 서방은 이를 반대했으나 미국은 보고 의무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소련은 즉각 독립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최종 결의는 미국에 “청정 진단서(clean bill of health)” 를 주어 푸에르토리코의 자치를 인정하면서도, 앞으로는 유엔 총회가 이런 문제를 판정할 배타적 권한을 가진다고 못박는 절충으로 귀결되었다. 즉,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성과를 거두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유엔 권한이 강화된 것이며, 하스는 이를 경제·식민 문제도 집단안보와 맞물려 흥정과 균형의 대상이 되는 구도로 해석하였다.

냉전기 국제기구 운영의 핵심은 지역 동맹 내부 합의가 불완전할 때 유엔(UN) 무대에서 balancing(균형) 과정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소련은 내부 결속이 강해 압력에 덜 흔들렸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이란 철군(1946), 한국전 정전 협정(1953), 인도차이나 제네바 협정(1954) 등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중립국이나 NATO의 압력 때문에 전술적 양보를 했으며, 이전에 거부하던 유엔 기술원조 프로그램과 전문기구에도 부분 참여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노선 변화라기보다 체면·외교적 압력에 따른 전술적 조정이었다.

반대로 미국은 동맹 결속(NATO·SEATO·OAS) 과 유엔 정당성 확보를 중시했기 때문에 더 자주, 더 큰 양보를 강요받았다. 예를 들어, 독일 재무장 문제에서 동맹국 우려를 달래고, 군사 부담을 나누기 위해 군사 stretch-out(무기 배치·재무장 계획의 속도·규모를 늦추고 분산하는 조정 방식)을 선택했다. 또한 한국전에서는 미국이 처음엔 중국 본토 폭격, 심지어 핵무기 사용까지 고려했지만, 영국·캐나다와 인도 등 아시아 중립국들이 강력히 반대해 결국 정전 협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도차이나 위기(1954)에서도 미국은 직접 군사개입과 ‘통킹만 다국적군 투입’ 을 검토했으나, 동맹국과 아시아 중립국의 신중론에 밀려 제네바 협정(분단 및 선거 약속)을 수용했다. 미주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개발·원자재 협정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그 대가로 반공 결의를 얻는 식의 안보-경제 맞교환을 진행했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문제(1953)에서는 미국이 해당 지역을 자치국으로 인정받아 유엔 보고 의무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아시아·아프리카·라틴 국가들은 유엔이 자치 여부를 판정할 competence clause(권한 조항)를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종 결의는 미국의 뜻을 일정 부분 반영하면서도, 앞으로는 유엔 총회가 자치·독립 판정의 최종 권한을 가진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더불어 미국의 핵 전략도 초기의 ‘대규모 보복(massive retaliation)’에서 ‘지역 방어력 + 전술핵(tactical nuclear weapons, 장거리 전략핵과 달리 전장에서 제한적으로 쓰이는 핵무기) 중심으로 완화되었고, 군축 협상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논의도 확대되었다. 이는 동맹과 중립국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양보로, 결국 국제 균형은 소련에게는 전술적 조정을, 미국에게는 구조적 양보를 강제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하스가 말하는 냉전 시대의 국제기구 균형은 단순히 서방과 소련의 대립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제3세력(아시아·아프리카 중립국, NATO 내부 이견 등)이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삼극(tripolarization) 구조로 굴러갔음을 보여준다. 경제개발, 탈식민, 안보 이슈가 얽혀서 각국은 서로에게 양보와 교환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미국·소련도 자기 원칙을 그대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실용적 고려(expediential Cold War considerations)’에 따라 유엔에서 조정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은 단순히 전쟁을 막는 집단안보 기구를 넘어, 분쟁의 평화적 해결(pacific settlement)을 위한 무대가 되었으며, 특히 2/3 다수결, 거부권(veto), 이중 거부권(double veto) 같은 절차적 장치가 각 진영의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을 했다.

이 점은 고전적 세력균형(balance of power)과 구별된다. 전통적 세력균형은 군사력과 영토에만 초점을 맞추고, 강대국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진영을 바꾸는 ‘free-wheeling’ 방식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유엔 체제의 균형은 그런 자유로운 편 바꾸기가 아니라, 제도와 규범 속에서 얽혀 있는 다차원적 협상이다. 즉, 냉전 시기 국제기구의 균형은 ‘법과 절차가 강대국의 행동을 제약하고, 제3세력의 존재가 균형을 조정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고전적 세력균형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시아·아프리카는 군사력은 약하지만 세계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심리적·정치적 영향력으로 강대국을 제약한다. 이런 과정은 단기적으로는 전쟁을 억제하는 숨 쉴 틈(breathing space)을 제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생 독립국 증가, 산업화, 핵기술 확산으로 다시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가 등장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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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UN 헌장
  1. 목적 (Article 1)
    •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maintain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 국가 간 우호관계 발전.
    • 국제 협력 증진(경제·사회·문화·인도적 문제 해결).
    • 인류 공동의 목표 달성 위한 중심 기구 역할.
  1. 원칙 (Article 2)
    • 회원국의 주권평등(principle of sovereign equality).
    • 무력 사용 금지(prohibition of the use of force) — 단, 자위권(self-defense)과 안보리 승인된 집단안보는 예외.
    • 국내 문제 불간섭(non-intervention in domestic affairs).
  1. 안전보장이사회 (Security Council, Chapter V)
    • 국제 평화·안전 관련 “1차적 책임(primary responsibility)”.
    • Big Five 상임이사국 + 비상임이사국(2년 임기).
    • 거부권(veto): 상임이사국 하나라도 반대하면 중요한 결의는 통과 불가.
  1. 총회 (General Assembly, Chapter IV)
    • 모든 회원국 동등한 1표(one state, one vote).
    • 평화와 안보를 포함한 중요 문제 토의·권고 가능(하지만 구속력 없음).
  1. 지역기구 (Article 51, Chapter VIII)
    • 무력 공격 시 개별·집단적 자위권(right of 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se) 인정.
    • 지역기구는 안보리 승인 하에 안보 관련 조치 가능.
  1. 경제·사회 협력 (ECOSOC, Trusteeship System, ICJ)
    • 경제사회이사회(ECOSOC): 경제·사회 문제 조정.
    • 신탁통치제도(Trusteeship Council): 식민지·신탁지역 관리 → 탈식민화 촉진.
    •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적 분쟁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