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세계은행, WTO 등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지도자 선출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그 결과 가장 유능한 후보들이 배제되고, 장기화된 권력 다툼이 기관의 핵심 업무를 방해한다. 1998년 유럽중앙은행이나 UN난민기구 수장 선임 때의 혼란처럼, 공정하고 효율적인 절차의 부재는 세계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세계화로 국제규범과 협력이 절실한 지금, 이러한 인사 파행은 다자기구의 정당성과 기능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대부분의 국제기구 지도자들은 회원국의 제약 속에서 제한된 권한만을 가지며, 조직이 탈선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관리자(housekeeper)’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의제 설정권(agenda-setting power)을 통해 어떤 사안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를 결정하고, 예산 절차(budgetary procedures), 재정 통제(financial controls), 인사 정책(personnel policy), 조달 정책(procurement policy) 등 내부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유능한 지도자는 회원국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가 되지만, 무능한 지도자는 조직의 기능과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에두아르 사우마(Edouard Saouma, FAO)와 나카지마 히로시(Hiroshi Nakajima, WHO) 시절에는 행정비 지출이 급증하고 효율성이 떨어졌으며, 제임스 울펜슨(James Wolfensohn, World Bank)은 자원을 선진국의 외교정책에 활용했다. 세계은행의 연구 예산이 홍보 예산과 거의 같았다는 점은, 스스로를 ‘지식기관(knowledge institution)’이라 부르는 조직으로서는 아이러니한 사례였다.
하지만 국제기구의 지도자 선발 과정에는 객관적 평가 기준이나 감시 장치가 부족해, 회원국이 무능한 지도자에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제재는 ‘재임 거부(denial of new terms in office)’뿐이다. 실제로 사우마(Saouma)는 제도를 조작해 장기 재임에 성공했다. 이러한 사례는 처음부터 가장 적합한 인물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올바른 리더는 신뢰를 구축하고 조직의 효율성과 정당성을 강화하지만, 잘못된 리더는 국제기구 전체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린다. 따라서 지도자 선발 과정의 개혁은 단순한 절차 개선이 아니라 세계 거버넌스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이다.
대부분의 국제기구는 최고위직 임명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선출 과정이 비공식적 관행과 정치적 거래에 의존한다. 유엔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사무총장 선출에 실질적 거부권을 가지며, IMF와 세계은행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에 따라 IMF 수장은 유럽인이,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인이 맡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절차는 공식적인 심사나 투명한 경쟁 없이 국내 정치적 타협을 반영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와 바버 커너블(Barber Conable)을 각각 자국 정치 상황에 따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했다.
이처럼 국제기구의 지도자 선발은 실질적으로 회원국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투표에 의해 좌우된다. 각국은 후보 개인의 능력보다는 국적이나 지역적 배경을 통해 정책 성향을 예측하고, 향후 외교적 보상이나 원조 확보를 위해 지지를 교환한다. 유엔 사무총장직 역시 ‘1국 1표’의 민주적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이 막후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 결과적으로, 국제기구의 수장은 종종 전문성이나 자질보다는 정치적 거래의 산물로 선출되며, 이는 세계 거버넌스의 정당성과 대표성을 훼손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수장 선출 과정은 표면적으로는 절차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회유(cajoling), 압박(arm-twisting),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이 난무하는 정치적 협상장에 가깝다. 일본이 ITU(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 사무총장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원조 확대를 미끼로 표를 확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각국은 ‘누가 언제 누구를 지지했는가’라는 복잡한 정치적 거래 장부를 관리하며, 국가별·지역별 안배가 실제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폐쇄적 관행 속에서 후보자 개인의 역량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투명성은 실종된다.
2000년대 초 IMF의 수장 교체 과정은 이러한 구조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독일은 자국의 재무차관 카이오 코흐-베저(Caio Koch-Weser)를 후보로 내세워 유럽 내 인사 거래(ECB, EU Commission, NATO 등)를 근거로 지지를 호소했으나,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또 다른 독일인인 호르스트 쾰러(Horst Köhler)가 타협안으로 임명되었지만, 그는 ‘2순위 후보’라는 낙인 속에 권위가 약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럽과 미국 간의 긴장이 심화되었다. 이런 인선 방식은 실력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서며, 주요국 간의 정치적 부채(political debts)만을 쌓는 결과를 낳는다.
보다 근본적으로, 국제기구의 제도적 구조(institutional grid)는 1940년대의 권력 구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늘날의 다극적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G7과 EU는 전 세계 인구의 14 %에 불과하지만 IMF 집행이사회의 56 %의 투표권을 행사하고, 총재 역시 그들 중에서 선출된다. 반면 중국과 인도처럼 인구의 70 % 이상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은 지도부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FAO, G20 등에서도 선진국 중심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으며, 독일과 일본조차 과거사와 제도적 관행 탓에 주요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지역주의(regionalism)의 부상으로 더욱 복잡해져, EU는 상황에 따라 ‘단일 행위자(single entity)’와 ‘개별 회원국 집합’ 사이를 오가며 국제기구의 권력 균형을 흔들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거버넌스의 핵심 구조는 여전히 폐쇄적 클럽(clubby world)으로 남아 있다.
세계화와 기술혁신으로 국제기구의 역할과 권한이 급격히 커지면서,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지도자 선출 과정에 얽히게 되었다. 특히 WTO와 같이 제재 권한(sanctioning authority)을 가진 기구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대표성 불균형이 선출 갈등으로 이어졌다. 1999년 WTO 사무총장 선출에서는 유럽 출신 지도자들이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비판 속에, 네 달간의 공백 끝에 임기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나누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동시에 디지털 혁명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 다툼을 낳았다. ICANN(인터넷 주소 관리기구) 선거에서는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지적재산권 보호를 명분으로 소비자 이익을 배제하려 했고, 시민단체의 개입으로만 사용자 직접 선거가 보장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오늘날 다자기구가 단순한 행정기구가 아니라, 복잡한 권력 경쟁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세계은행과 IMF는 임명 절차 개혁을 위한 고위급 검토(high-level review)를 시작했다. 제안된 개혁안은 △투명하고 명확한 규칙(clear and transparent rules), △상설 인선위원회(standing selection committees), △임기 제한(term limits), △독립적 성과평가(independent performance appraisal)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근본적 난제는 여전히 남는다. 핵심 기여국이 반대하는 인물을 임명하면 재정 지원이 중단될 위험이 있고, 반대로 부유국 중심의 폐쇄적 절차는 국제기구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약화시킨다. 세계기구의 민주적 결핍(democratic deficit)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금 기여와 대표성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지만, 완전한 민주화는 효율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결국, 불투명하고 임시적인 선출 절차가 지속되는 한, 국제기구는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