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그로티우스의 국제법

Hugo Grotius, The Free Sea (1609)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e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16), preface and chs 1-5, 8, 12-13(pp 1-44, 61-64, 69-76)
Oct 13, 2025
그로티우스의 국제법

그로티우스의 『자유해(The Free Sea)』는 17세기 초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간의 무역 분쟁을 국제적 원칙의 문제로 확장시켜 유럽 세계의 지지를 얻고자 한 논쟁서이다. 그는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를 비판하며, 정의는 신과 자연에서 비롯된 보편적 법으로 통치자와 평민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신이 세계 곳곳에 서로 다른 자원을 배분한 것은 인류가 무역을 통해 교류하며 살아가도록 의도한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항해와 무역의 자유를 ‘모든 인류의 자연권’으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로티우스는 포르투갈의 주장 ‘발견’, ‘교황의 기부’, ‘정복’, ‘점유’ 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어떤 국가도 바다를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바다는 경계나 점유가 불가능한 공공재로, 그 사용은 전 인류의 공동 권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교도 지역에 대한 기독교 국가의 정복이나 강제 개종은 불의한 행위이며, 교황에게 세속적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리를 통해 네덜란드의 동인도 무역 진출은 정당한 권리 행사로, 포르투갈의 독점은 자연법에 어긋나는 불법으로 규정된다.

결국 『자유해』는 ‘자연법’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통해 네덜란드의 ‘국가 이익’을 정당화한 정치적·법철학적 문서였다. 그의 사상은 훗날 국제법의 토대가 되었지만, 동시에 ‘보편적 정의’가 특정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얽히는 복합적 긴장을 보여준다. 현대에 이르러 해양이 배타적 경제 수역(EEZ) 등으로 분할된 현실 속에서도, 그로티우스의 “해양의 자유” 원칙은 여전히 해양공유·국제항로 보장·공해의 자유 같은 국제 규범의 근본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기초로 남아 있다.

그로티우스의 『전쟁과 평화의 법(The Law of War and Peace)』 그리고 헤드리 벌(Hedley Bull)의 「The Grotian Conception of International Society」에서는 전쟁과 법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전쟁은 권리의 집행”일 때만 정당하다고 했다. 법은 단지 강제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이성에서 비롯된 질서로 존재한다. 그는 전쟁의 정당성(just cause)을 강조하면서도, 전쟁 중에도 법과 신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전쟁을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닌, 국제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그는 시민법(국내법), 국제법(만국법), 신성법의 체계를 구분하고, 특히 국제법을 “국가들의 합의와 관습에서 비롯되지만 그 근원은 자연법에 있다”고 정리했다.

Hedley Bull은 그로티우스를 단순한 국제법학자가 아닌 ‘국제사회(society of states)’ 개념의 창시자로 해석하며, 국제정치를 “무정부(anarchy)”와 “질서(order)” 사이의 현실적 균형으로 보았다. 그로티우스에게서 국제사회는 힘의 경쟁장이 아니라 공동의 법과 도덕적 규범에 의해 부분적으로 통제되는 사회적 질서이며, 국가들은 주권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연법과 이성에 따라 서로 연대(solidarity)해야 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벌은 이러한 그로티우스의 입장을 20세기 실정주의자인 오펜하임(Oppenheim)과 대비시킨다. 오펜하임이 국제사회를 단지 “국가 간 최소한의 공존(coexistence)을 위한 합의체”로 보고, 전쟁의 원인에 대해 법적 판단을 유보한 반면, 그로티우스는 전쟁이 정당한 원인(just cause) 아래 수행되어야 하며, 불의한 전쟁에 대한 도덕적 구분과 개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로티우스는 개인 역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보고 인도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오펜하임은 오직 국가만을 법의 주체로 인정했다. 벌은 이 차이를 통해, 그로티우스적 관점이 도덕과 정의의 보편성에 근거한 “연대의 질서”라면, 오펜하임의 관점은 국가 주권과 실정법에 기초한 “절제된 다원적 질서(pluralist order)”라고 분석한다. 그는 그로티우스주의가 국제사회의 규범적 토대를 제시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한 연대의 이상이 현실의 다양성과 갈등을 간과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벌에게 그로티우스는 “법이 통치하는 국제사회”의 이상을 처음 제시한 인물이지만, 그 이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의(법적 연대) 와 질서(정치적 공존)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편 Keene, Pangle & Ahrensdorf는 그로티우스 사상의 해석이 어떻게 영국학파의 국제사회 이론으로 축소·재구성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먼저 Keene은 현대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영국학파의 정통 이론이 ‘국가체계(states-system)’와 ‘국제사회(society of states)’를 결합해 주권과 불간섭의 원칙을 강조하지만, 이는 사상사적 순서를 뒤집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본래 16~17세기 자연법학자들이 societas gentium(인류공동사회) 개념을 통해 국제법의 보편성을 모색한 것이 먼저였음에도, 18~19세기 보수적 역사가들이 이를 반혁명적 정치 목적에 맞춰 재해석하면서, 국제사회 개념은 ‘주권국가들의 조약 질서’로 축소되었다. 영국학파는 이러한 국가체계 중심의 서술을 그대로 이어받아 비유럽 세계의 역할을 배제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질서를 단순히 유럽 세력균형의 부속물로 처리했다.

이어 Keene은 그로티우스의 만국법(Law of Nations) 이 단순히 국가 간 규범이 아니라 공적 권위와 사적 권리의 복합체계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로티우스는 주권의 분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군주·국민·회사·비유럽 통치자 등 다양한 주체가 법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사유재산론과 점유 개념(occupatio)은 식민지 정착의 법적 근거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비국가·비유럽 행위자에게도 법적 권리와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즉, 그는 근대 유럽 질서를 정당화한 인물이면서도, 자연법과 의사법(volitional law)을 결합해 국제질서를 다층적으로 이해한 복합적 사상가였다. 그러나 후대 영국학파는 이러한 복합성을 제거하고, 그로티우스를 단순히 ‘국가 간 합의와 제도 공유를 강조한 합리주의자’로 재해석했다.

Pangle과 Ahrensdorf는 그로티우스를 근대 이상주의의 선구자이자 중세 정전론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한다. 그는 카르네아데스의 회의주의에 맞서 인간의 사회성과 이성에 기반한 정의를 옹호했지만, 정의를 덕의 실현이 아닌 질서와 재산의 보호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자연법을 보편적 이성의 법으로 정립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국제사회의 현실적 안정과 권리조정에 필요한 의사법(volitional law) 을 강조하면서 자연법의 이상을 제한했다. 이는 국제법을 도덕적 진보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국제사회의 최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장치로 본 것이다. 따라서 세 저자는 공통적으로, 그로티우스가 국제법의 도덕적·자연법적 기초를 세우려 했으나, 후대 영국학파가 이를 국가 중심의 실정주의 체계로 축소시켜, 오늘날 국제사회 이해에서 제국주의·식민질서·비국가 행위자의 문제를 희석시켰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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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티우스는 『자유해』에서 점유에 근거한 독점과 정복을 명확히 비판하며, 바다와 무역의 자유를 인류의 보편적 권리로 제시했다. 이는 제국주의적 지배 논리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항해와 교역의 자유’라는 자연법적 원칙은 역설적으로 유럽 상업제국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보편 언어로 전용되었다. 일부 저자는 그를 “법이 통치하는 국제사회”의 창시자로 찬양하지만, 그의 연대(solidarity) 개념은 결국 서구 중심의 질서유지 논리로 귀결되어 식민·비서구 세계의 폭력적 현실을 외면한다고 볼 수도 있다. Keene은 이런 왜곡을 폭로했으나, 그로티우스가 스스로 제국적 확장의 법리(점유, 사적 전쟁, 상업적 권리) 를 제시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비판하지 못했다. Pangle과 Ahrensdorf는 그로티우스의 법 사상을 현실적 질서유지의 장치로 평가했지만, 이 역시 법이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간과한다. 결국 세 관점 모두, 그로티우스가 남긴 ‘법의 보편성’이 어떻게 힘의 비대칭을 은폐하고 제국적 질서를 합리화했는가라는 근본 문제를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