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eun Sim

정의로운 평화

1. Pangle, Thomas & Peter Ahrensdorf. Justice Among Nations: On the Moral Basis of Power and Pea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1999), Ch. 4, pp. 73-124. 2. Loriaux, Micahel, “The Realists and Saint Augustine: skepticism, Psychology, and moral action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ought”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Vol. 36, NO. 4, pp. 401-20 (1992).
Oct 15, 2025
정의로운 평화

1.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도성(City of God)』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가 타락 이후 원죄(Original Sin) 속에 태어나며, 이로 인해 고통, 불안, 자연재해, 기근, 질병과 같은 비참한 조건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교만(pride)으로 신과의 조화를 잃었으며, 오직 신의 은총(grace)을 통해서만 참된 행복과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 그는 인간 사회를 두 도시(the two cities) 로 구분한다. 하나는 자기애와 세속적 욕망에 기반한 ‘세속의 도시(City of Man)’, 다른 하나는 신에 대한 사랑과 순종에 기반한 ‘신의 도시(City of God)’ 다. 이 구분은 권력, 재물, 명예를 좇는 인간의 사랑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따라 갈린다.

그에게 평화(peace) 는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악한 자조차 평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악인도 자신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평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도둑 집단, 폭군, 제국의 정복자들조차 평화를 원하지만, 그 평화는 타인을 지배하고 억압함으로써 얻는 위장된 평화에 불과하다. 반대로, 신의 도성의 시민들은 신을 사랑함으로써 참된 평화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악한 왕은 노예이며, 선한 노예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참된 자유는 외적 권력이 아니라 내적 의지와 덕(virtue)에 있다고 강조한다. 세속의 도시는 언젠가 붕괴되지만, 신의 도시는 영원하다.

2. 아우구스티누스와 현실주의(Realism)의 관계

현대 국제정치학자들(니부어, 모겐소, 카 등)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최초의 현실주의자”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그가 인간의 개선 불가능성, 정치 질서의 불완전성,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어서 영구적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모겐소는 도덕보다 권력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보았고, 니부어는 “정의로운 정치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인간의 이성과 의지만으로는 선을 완성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신플라톤주의의 “이성에 의한 자기 완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현실주의자들과 다르다. 그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행위(moral action)사랑(caritas) 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주의가 도덕을 정치로부터 분리하려 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를 도덕적 교화(moral education) 에 두었다. 그는 정치질서를 인간의 죄에 대한 “필요악”으로 보되,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덕을 훈련시키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현실주의자들이 ‘힘의 질서’를 강조할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의 질서(ordo amoris)’를 말한다. 이 차이는 그가 단순한 회의론자가 아니라, 도덕적 이상주의를 내재한 신학적 현실주의자(theological realist) 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3. 도덕, 전쟁, 그리고 정치에 대한 함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쟁관은 현실주의자들이 종종 오해하는 부분이다. 그에게 정의로운 전쟁(Just War) 이란 단순히 국익이나 복수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charity)과 도덕적 교육의 연장선이다. 그는 “전쟁은 경찰권의 확장된 형태”라고 말하며, 악을 억제하고 공동선을 회복하기 위한 징벌적이고 교화적인 행위로 이해했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쟁은 ‘방어적’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평화다. 그러나 그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말 자체의 모순도 인식했다. 완전한 평화는 원죄로 인해 실현될 수 없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불완전한 평화를 유지하며 덕을 배워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에게 정치란 신의 도성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인간을 훈련시키는 장이다. 기독교인은 세속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타락한 인간 사회 속에서도 가능한 한 도덕적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 말하는 “도덕적 국제정치” 혹은 “책임 있는 개입(responsible intervention)” 개념의 신학적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때로는 내정 간섭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나 주권은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 아니라, 도덕 교육을 위한 도구로 간주했다. 요컨대, 아우구스티누스의 급진성은 세속 권력의 정당화를 넘어, 인류 전체의 도덕적 교화를 정치의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4. 정의로운 평화

정의로운 평화(Just Peace)’는 최근 등장한 개념으로, 전통적인 정전론(Just War Theory)을 비판하며 발전된 입장이다. 정의로운 평화론은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준을 훨씬 더 엄격하게 설정한다. 즉,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보다 “전쟁 자체를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한다. 독일 주교단의 공동선언(1990년대)은 이러한 정의로운 평화론을 제안했는데,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 교회가 히틀러의 침략 전쟁을 저지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아퀴나스 전통의 정전론이 히틀러의 전쟁을 비판할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기존의 정전론은 ‘언제 전쟁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했지만, 정의로운 평화론은 ‘어떻게 전쟁을 막을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 글(Christian Nikolaus Braun, Quo Vadis?)은 정의로운 평화론의 주장에 반대하며, 오히려 아퀴나스의 정전론이 전쟁을 비정당화(delegitimize)하는 기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퀴나스의 정전론은 세 가지 조건 — 주권자의 권위, 정당한 원인, 올바른 의도 — 에 근거한다. 첫째, 주권자의 권위에 관해 Johnson은 “도덕적 통치자”라는 전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지만, Reichberg는 이 조건이 아퀴나스 체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본다. 이 해석의 차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주교들이 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는지를 설명해준다. 히틀러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이후 폭군이 되었고, 아퀴나스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폭군 제거(tyrannicide)가 정당화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이 논리를 실제로 활용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다.

둘째, 정당한 원인(just cause)올바른 의도(right intention) 는 아퀴나스가 가장 중시한 부분이다. 정당한 원인은 응보주의(retributionism)와 책임주의(liabilism) 두 관점으로 나뉜다. 응보주의는 불의에 대한 비례적 응징을, 책임주의는 자기방어를 정당화 근거로 둔다. 하지만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은 자기방어로 포장되었을 뿐 실제 위협이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조약의 불공정함을 응보한다는 주장 역시 명분에 불과했다. 히틀러는 전쟁을 확장하면서 명백히 불순한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에, 아퀴나스가 제시한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퀴나스는 전쟁의 핵심을 “사랑(charity)의 문제”로 이해했다. 그는 폭력 속에서도 정의를 구현하려면,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프란시스코 교황 역시 “어떤 폭력도 옳은 수단이 될 수는 없지만, 침략당한 국가에는 자기방어권이 있다”고 말했듯이, 아퀴나스의 입장은 비폭력과 정당방위 사이의 중간 지점을 제시하는 실천적 틀을 제공한다. 그는 비폭력적 수단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평화를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제한된 폭력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정의로운 평화’와 ‘정의로운 전쟁’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